[일상에세이] 손편지의 힘 by layl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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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ylador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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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세이] 손편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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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고물님 왈, 편지를 쓴다는 것은 상대방의 내면에 가닿는 일이라고 했다. 오로지 편지를 쓰는 사람과 편지를 받는 사람만이 존재하는 가상의 공깐이며 두 사람이 진심을 다해 부딫히기로 합의한 의식이라는 그녀의 글은 참 곱다. 이런 따듯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분명 편지로부터 깊은 위로와 사랑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emsp;편지는 이타심이라는 단어와는 아주 먼 성질을 갖고 있다. 고물님 처럼, 나도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 속에서 힐링을 받는것 같다. 하지만 편지를 쓰는 것은 모든것이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유일하게 무해할 수 있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나 오랫동안 펜을 잡지 못했다. 알수 없는 이유로 불면증에 시달리던 무더운 7월 말 즈음. 그러던 내게 한국에서 온 편지도 아닌, 은행에서 날라온 지겨운 고지서도 아닌 무려 미국 국기의 우표가 붙여져 있는 편지 한통이 도착했다.

&emsp;며칠 전 미국에 살고있는 절친으로부터 편지를 썼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이렇게나 빨리 도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프랑스가 왠일로 일을 열심히 하는 건가? 편지 꾸러미와 우체통 키를 들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 올라와서 꺼진 소파에 푹 앉았다. 오랜만에 받는 손편지였기에 기뻤지만 왠지 선뜻 열어볼 기분이 들지 않았다. 

&emsp;발을 툭- 툭- 들었다 놨다 하면서 초점없는 눈은 가만히 편지봉투를 들여다 본다. 저렇게나 멋진 글씨체를 갖고 있는 친구는 나에게 어떤 말을 썼을까 궁금해졌다. 지난 날의 나는 꽤나 진지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마음을 종종 받곤 했고 아직도 그 소중한 편지들은 가끔 찾아오는 우울한 날에 술보다 더 좋은 힐링제가 되어준다. 그렇기에, 편지봉투를 여는 순간 그때 그 소중한 추억들이 왠지 울컥 쏟아질 것 만 같아 망설여졌다. 문득, 편지를 잘 받았다고 연락을 해야 할것 같아 카톡 앱을 켜고 친구를 찾았다.
<br>
>뭐야 벌써 갔어?? 프랑스 왠일로 일을 이렇게 빨리하지

>ㅋㅋㅋ 그러게. 편지는 생각보다 빨리오네. 고마워

>한국은 겁나 오래 걸리던데 한국이라 그렇겠지. 앞으로 더 보내야겠다.

<br>
&emsp;편지를 보낸게 금요일이니까.. 하며 도착한 시간까지 계산을 하고있는 친구를 보니 갑자기 마음이 뭉글뭉글, 잘 숙성된 치즈같이 따듯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충동적으로 편지를 집었다.  편지봉투가 접힌 부분을 살살 칼로 뜯어보았다. 부욱, 헉! 아놔... 편지를 강력본드로 밀봉했냐 뜯기 왜 이렇게 어려워. 다행히 안의 내용물은 무사했지만 봉투 겉부분이 찢어져 버렸다. 

&emsp;이 친구를 만났던 그 순간이 이상하리만치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합정역 근처에 위치했던 연습실에서 한여름 더위를 간신히 견디고 있던, 무려 4년 전 썰인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창 연습하던 도중 잠깐 나가 쉬고 있는데 낯선 누군가가 연습실로 걸어들어왔고, 내게 옆방 피아니스트 형을 찾았다. 참 앳되게 생겼는데 말끔한 정장을 빼입고 있었고 잘 정돈된 머리는 회사원 또는 군인 같은 인상을 주었다. 친한 사이 같아 보였고 내 또래였기에 거리감은 느껴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emsp;처음 만난 상대와도 편히 대화를 나누는 편이긴 하지만 이 친구와는 첫 만남부터 뭔가 통하는 느낌이었다. 마침 친구가 찾는 형은 부재중이라 그는 형이 돌아올때까지 연습실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쏠랑 내 연습실로 들어가긴 좀 뭐해서 홀에서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길로 바로 같이 나가서 커피를 마셨었나, 뭔가 불투명하게 떠오르는데..조각난 기억이기에 아쉬울 뿐. 하여튼 결국 그는 나와 함께 듀오로 공연까지 하게 되는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다.

&emsp;우린 당시 서로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커리어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어느 곳에 머물것인가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친구가 많았고 어딜 가든 환영받는 타입이었다. 게다가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관계를 소중하게 대하며 주위 사람들을 살뜰히 챙기는 그의 모습이 좋았다. 사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였고 나 또한 프랑스행을 생각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둘다 해외생활을 오래한지라 공통점도 많았고 무엇보다 배울점이 참 많았다. 

&emsp;같이 보낸 시간이 짧았지만 그 누구보다 가까운 몇 안되는 소중한 인연인 그는 이번 편지에 'happiness'란 단어를 세번이나 썼다. 무엇보다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는 내용은 그간 내가 얼마나 징징댔는지를 짐작케 한다. 실제로 매일 불안한 우리의 현실, 복잡한 사람관계, 경제적 어려움 등 참 힘든 이야기만 해댔게 떠올랐다. 아이고 미안해라... 진정 편한 친구이기에 오히려 더 응석을 부린것이 친구에게 걱정거리만 안겨준게 아닌가 싶기도. 속 깊은 친구는 그때마다 토닥토닥 해주며 투정을 전부 받아준다. 이젠 지겨울 법도 하건만 참 고맙다. 

&emsp;편지에 닿았던 친구의 손길과 그 마음에 하루종일 몸이 2cm는 붕 떠다녔다. 친구의 말처럼 4년 전 우리가 만났던 그 여름, 훨씬 어렸고 자유로웠지만 무엇보다 서로를 만날 수 있어서 제일 행복했던- 그때의 추억이 편지 한통으로 내 온 몸을 감싸주는 듯 했다. 이처럼 편지같이 강력하고도 좋은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은 흑백이던 일상을 환하게 밝힌다. 마치 내가 고민하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내 삶으로 들어와 나를 이끌어 올려주는 것이다.

&emsp;음악도 마찬가지다. 편지도 진심을 담아 사랑하고 존경하는 누군가를 위해 쓰듯이 그 누구도 증오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를 하지 않는다. 이런 공통적이며 따듯한 일들만 모아놓고 빚어놓은 부드러운 일상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나를 이루고 '좋은 나'를 생성한다.

&emsp;이젠 편지의 답장을 써야겠지. 사실 깜짝 선물로 미국으로 날아가 놀래켜 주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도 있지만- 간직만 하는 걸로. 왜냐하면 올해 말에서 내년 초에 미국으로 가는 긴 여행을 같이 짤 계획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미국행 티켓은 그리 어렵지 않게 살 수 있다. 때만 잘 맞춘다면 특가의 찬스를 노려볼 수도 있어 틈틈히 티켓을 알아보고 있다. 이제 필요한건 지르는 용기뿐. 그 용기가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게 흠이지만.

&emsp;요샌 길거리를 걷다가도 문득 친구 생각을 한다. 그가 겪고 있는 일들과 고민, 불안이 모두 좋은 결과로 한층 숙성되어 빚어지기를 바라면서. 아직 서로가 징징댈 기회는 한참 남아있으니까 지치지 말자, 친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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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omul ·
아침부터 기분 너무 좋아지는  레일라님의 글! 미국으로부터의 뜻하지 않은 편지라니 두 분의 서사를 플래시백하게 만들며 그리움 애틋함 소환, 얼마나 아끼는 분인지 아이처럼 기뻐하는 레일라님 느껴져요.
곧 미국 여행가서 친구분 깜짝 놀라게 해주세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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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
ㅎㅎ 편지덕분에 텐션이 올라가서 주접을 떨었는데, 그 발랄함이 글에 묻어났다니 다행이네요. 친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얼마든지 다 내어줄수 있고 나를 꾸밀 필요가 없으니 참 편한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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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tt925 ·
말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꾹꾹 눌러 쓴 글자에 마음도 함께 담기는 손편지가 더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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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
epitt925님도 그러하시군요! 저도 그렇습니다. 물론 이메일로 받는 편지도 좋고 손편지도 좋지만, 손편지는 왠지 보물같은 느낌이에요. 잘 간직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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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yman84 ·
군대에 있을때 그렇게 편지를 많이 쓰고 기다렸었는데 그때의 기다림이 그리워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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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
안녕하세요. ^^ eyman84님도 편지를 많이 써보셨군요. 저도 군대에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써본적이 있는데 그렇게 기다리더라구요. 좋아하는 모습에 저도 뿌듯했던 기억이나요. 그때의 기다림이 그리워진다는 문장 참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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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onicalee ·
마음이 통하는 친구의 손편지는  레일라님 에게 좋은 보약이 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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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
글씨체가 굉장히 정갈하니 몇번이고 읽게 되네요. ^^ veronica 님 말씀처럼 보약으로 쓰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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