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주말부부 비슷한 것을 하고 난 후 싸울 일이 없었다.
오랜 만에 만나니 웬만한 것은 싸울거리도 못 되었고 나도 남편도 양보하고 넘어가기 때문이었겠지.

남편은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아니다. 싸울 때도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는다. 냉정하고 묵직하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따진다.

나는 싸울때 목소리가 커지고 속도도 빨라진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고 하지만 결국 "왜 소리를 지르냐"고 하면 내가 진게 된다. 부부 사이에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는 건 아닌 것 같다. 더 차분한 사람이 이기는 것 같다.

이성적으로 이리 저리 따지면 소리 지른 내가 무색해진다.

나도 다음에는 저렇게 차분하게 이성적으로 따져야지 다짐한 지 어언 이십년이 넘었다.

언젠가부터는 이제 나도 제법 이성적으로 따질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별것도 아닌 사실에 서로 맞다고 옥신각신하다가 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아니라고.그게 아니라고."

맞는데, 그게 맞는데 남편이 아니라고 큰 소리를 냈다.
남들이 듣기에는 그냥 별 것 아닌 큰 소리지만 나에게는 1년에 한 번 정도 들을수 있는 큰 소리이다.

나는 큰 소리로 이야기 잘 하면서 남편이 큰 소리를 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면역이 안돼서 그런가보다.

'맞는데?  왜 아니라고 소리를 질러?'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운전중이라 그리 말하지 않았다.

"난 맞다고 생각하는데 뭐 크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냥 넘어가죠."

넘어갔는데 속으로 좀 화가 났다.

왜 자기 말이 다 맞다고 확신할까. 
100%는 아닌데 말이다.

잠시 아무 말없이 차를 타고 가면서 생각해보니 언젠가부터 우리 서로 바뀌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큰 소리로 싸우지 않는다. 냉정하게 나즈막하게 따진다.
남편이 큰 소리를 낸다.

바뀌었다.
그리고 내가 이기는 횟수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백전백패였는데 이젠 거의 백전팔십승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니  적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오늘 큰소리 친 것도 본인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될 것이고 아마 창피할것이다.

중요한 건 아니라서 끝을 보지는 않았다.

그 뭐시라꼬. (내가 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