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청춘으로 사는 법 by paul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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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청춘으로 사는 법
은퇴식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작별의 인사를 고하고 총총히 떠나는 행사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아무도 은퇴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의 관습과 제도에 떠밀려서 떠나는 것뿐이다. 비록 회사나 기관에서 떠나지만 은퇴를 원하지 않으면 은퇴하지 않아도 된다. 비록 기존의 직장명부에서 이름은 지워지겠지만 또 다른 회사의 명단이 자신의 이름이 오를 수도 있고 자영업을 시작하여 새로운 꿈을 이루는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아니면 시간이 없어서 평생 가슴에 담아두었던 일을 실행에 옮길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회사의 틀 안에서 안주하며 자리만 지켜도 중요한 정보를 저절로 얻게 되는 일들은 이제 없다. 필요한 정보를 회의 시간에 들려주거나 회보로 돌려보게 하는 일들도 없다. 퇴근 후에 마주 앉은 식사자리에서 상사들과 동료들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들려주는 일도 없다. 그래서 은퇴를 하면 자신이 원치 않아도 세상과 벽을 쌓고 그 속에 들어앉아 은둔하게 된다. 그런 시간이 오래되면 세상과 떨어져 살게 된다. 새로운 기회를 잡고 싶어도 사람들이 외계인처럼 낯설어지고 점점 바뀐 세상에 적응할 수 없다. 은퇴를 하면 세상과 단절시키는 것은 자신이다.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눈을 감고 귀를 닫았기에 멀어지는 것이다. 비록 직장인의 신분은 아니지만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어두고 있다면 아무도 세상에서 밀어낼 사람은 없다.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만이 세상에서 떠밀려가는 것이다. 

  

배우기를 멈추지 마라.

  

필자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세상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배우려면 비싼 돈을 내고 학원에 등록해야 했다. 그것도 실제적인 활용이나 작동법이 아니라 실생활에 별 쓸모도 없는 컴퓨터언어나 프로그래밍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강사나 배우는 학생이나 무엇이 중요한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말보다 더 빨리 컴퓨터 작동법을 배운다. 컴퓨터를 작동시킬 줄 알아야 재미난 게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뿐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가 낯설고 새롭기에 그게 무엇인지, 어떤 곳에 쓰이는 물건이지,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모두 배워야 할 목록일 뿐이다. 한국전쟁이 터지고 쏟아져 들어온 미군에게 가장 먼저 말하고 듣는 실용영어를 배운 이들은 중고등학교 영어선생이 아니라 구두를 닦던 소년들과 술과 웃음을 팔던 여인네들이었다. 이들에게 영어는 생존비결이었기 때문이다. 배우기를 멈추는 시간부터 세상과 단절된다. 

  

은퇴자가 재취업을 꿈도 못 꾸고 자영업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신분과 일터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하더라도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경우와 은퇴자의 상황은 다르다. 생존이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하는 인간이지만, 은퇴한 뒤로는 별다른 능력을 보이지 않는 이들이 흔하다.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바꾸면 배우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필자의 가까운 친척은 젊은 나이에 사업에 실패한 이후로는 별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살다 이 땅을 떠났다. 남편의 무능함을 지켜보던 부인은 어쩔 수 없이 채소장사와 떡을 팔아가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만 했다. 돈을 버는 것에는 무능했던 가장이었지만 그 남편은 게으른 편도 아니었고 머리가 둔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삶과 변화하는 세상을 배우려 들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휴대용 가스렌지를 작동시킬 줄 몰랐으며 전구를 갈아 끼우는 것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이처럼 실생활에 필요한 사소한 것조차 배우지 않았는데, 새로운 직업을 갖거나 자영업에 성공하는 것은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이가 들면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을 포기할 때 새로운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배우기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생업 현장이나 세상의 중심에서 결코 떠밀리는 경우가 없다. 비록 사회제도나 직장의 규범이 그를 내밀더라도 새로운 직장이나 직업으로 사회의 중심에 재진입하기 마련이다. 배우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한, 절대로 삶의 현장에서 떠밀리지 않는다.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무료컴퓨터교실에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새파란 젊은 강사에게 세상에 처음 나온 어린아이 취급을 받으며, 영어가 범벅된 용어를 머릿속에 넣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있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100여년 전에만 해도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딸은 어머니로부터 가정생활의 지혜를 배우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농사짓는 것을 배워야만 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보면 머리를 조아리고 어른대접을 해야만 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죄다 알고 있는 노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다. 무엇을 배우려면 어머니는 딸로부터 핀잔을 들어야하고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잔소리를 각오해야한다. 세상이 변해 거꾸로 부모가 자녀들에게 배우고 있다. 핸드폰의 문자 보내는 것으로부터 인터넷에서 상품을 주문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자녀들의 핀잔을 들어가며 굽실거리며 배워야 한다. 물론 자존심을 상해가며 배울 필요까지는 없을 지도 모른다. 그냥 포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은 세상에서 무시당하고 떠밀리는 일이 아닐까. 배우기를 멈추는 순간부터 세상과 멀어지게 된다. 이는 새 직장을 찾고 자영업을 시작하는 일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사람대접을 받고 살아가는 일에도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것을 포기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아무도 당신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당연히 거기에서 해야 할 일도 없다. TV 앞에서 혹은 공원의 벤치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일일게다. 그렇지만 지금 지자체의 무료컴퓨터 교실이나 아님 자비로 요리학원에 등록을 하여 뭔가를 배우고 있다면 당신은 여전히 세상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는 동안에는 여전히 세상중심에서 떠밀리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통(通)하려고 애써라.

  

서울의 탑골공원이나 종묘공원에 가면 수많은 노인들로 북적거린다. 규모는 달라도 소도시의 공원이나 시골의 마을회관에도 노인들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이 하는 일은 TV를 시청하거나 윷놀이, 장기나 바둑, 화투치기에 지치면 지난 젊은 시절의 얘기에 열을 올린다. 과거에 돌아가면 영웅처럼 살지 않은 이가 없다. 군대나 직장에서 언제나 그는 최고였고 선망의 대상이었다는 줄거리이다. 물론 가끔씩 정치얘기를 꺼내는 이들도 있지만,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주제가 아니라 자신이 밀고 있는 정당이나 정치가에 대한 비판이나 칭찬에 불과하다. 이들의 대화가 현실적이지 않은 이유는 현재의 상황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현실감각이 떨어져 있다. 현재와 과거, 현실과 이상을 혼동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세상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집에 돌아가도 자녀들과 대화를 잊은 지 오래고 심지어는 배우자와도 깊이 있는 대화는 사라졌다. 생존에 꼭 필요한 대화만 어쩔 수 없이 오갈 뿐이다. 

  

지금껏 가지고 있던 사상이나 사고를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은퇴자에게 세상에서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은퇴하기 이전에, 직장이나 가정에서 자신이 중심으로 돌아갈 때는 일방적인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막강한 영향력과 우월한 존재감 때문에 아무도 불평을 입에 달지 않았다. 그렇지만 은퇴하고 나서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중심에서 빗겨난 변방에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희미해진 자신의 존재감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새로운 세상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실낱같은 기회라도 잡으려면 눈이 핑핑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알아야만 한다. TV만 틀면 스포츠중계나 드라마에 빠져있다면 세상의 변화를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뉴스만 반복해서 보고 있다고 세상을 아는 게 아니다. TV 뉴스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사고능력을 키워주지 못한다. 또한 일방통행식의 보도로 자신과 상관없는 사건을 보느라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세상과 통하려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대한 통찰력과 분별력을 가져야한다. 필자는 신문을 즐겨본다. 신문은 TV와는 다르게 선호하는 주제를 집중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내용은 스크랩해서 나중에 다시 꺼내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신문을 다 사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인터넷검색이 필요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는 주요 신문이나 언론의 헤드라인을 띄워주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아침이나 저녁 새로운 기사나 이슈을 돌려보면서 관심이 있는 기사는 읽어두거나 스크랩을 해서 따로 모아둔다. 또한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이다. 정확성이나 진실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풍부한 정보를 모아두고 클릭하는 모든 이에게 대가없이 제공해주고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문명의 혜택인가? 그렇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인터넷을 단지 화투게임이나 재미난 동영상을 보는 매체로만 사용한다면 이미 뒤쳐진 게임을 계속하고 있는 것과 같다. 

  

세상과 통하려면 검증되지 않은 지식이나 정보만 있어서도 안 된다. 정확하고 올바른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찰력이나 분별력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지혜와 총명이 필요한 셈이다. 올바른 판단력은 정확한 정보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정보나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올바른 결정을 하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적절하지 못한 것을 가려내야 한다. 크리스천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쳐야 올바른 판단이 서고 지혜로운 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거칠고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세상과 통하는 것은 세상에 휩쓸리는 것과는 다르다. 세상을 잘 관찰해서 얻은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그 곳에서 균형을 맞추고 세상을 리더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지혜의 신인 성령의 도움을 요청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은퇴자이거나 아니거나 험난한 세상을 헤치며 사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환경이 어렵고 상황이 부정적으로 몰아가는 은퇴자에게는 특히 더하다. 그러므로 세상과 소통하는 데 더욱 힘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몸은 늙더라도 정신은 젊음을 유지하라. 

  

늙은이의 특징은 소극적이며 무사안일주의를 들 수 있다. 물론 오랜 경험 탓에 무모한 일에 뛰어들지 않으며 그동안의 크고 작은 실패의 여파로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다. 무엇보다 지금 실패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변화를 두려워하고 현재의 안일한 상태에 머무르려 한다. 이러한 성향은 위험한 일을 피하며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급하게 일을 벌이는 것을 방지하는 장점도 있다. 그렇지만 매사에 부정적이며 무사안일한 태도로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적극적으로 적응하지 않는다면 주도적으로 살 수 없다. 중년의 나이를 지나면 누구나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지금까지 누렸던 안락하고 평안한 삶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두려움이란 머릿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한치 앞이 안 보이는 짙은 안개라도 해가 뜨면 곧장 사라지듯이 행동을 시작하면 두려움도 즉각 사라져 버린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버린 은퇴자들은 대부분 걱정과 염려에 사로잡혀 변화에 대응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삶의 주도권을 잃어버리는 최악의 결정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차일피일 미루며 결정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결정을 하는 것보다 더욱 나쁘다. 잘못된 결정은 교훈이라도 얻게 되지만 결정을 미루는 것은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군 선배는 1997년 외환위기 때 대기업 직장에서 명퇴하여 충북 청원의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평생 대도시에서 직장생활만 하다가 뜬금없이 농사를 지으러 시골에 들어간다고 하니 온 식구가 패닉상태에 빠졌다. 특히 형수님은 차라리 갈라서자고 선언하였고, 결정을 행동으로 옮겨 재산을 정리하여 반으로 나누고 별거에 들어갔다. 부모나 친구들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은 그의 무모한 결정을 말려보았지만 아무도 그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 사실 귀농을 결심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한다. 어릴 적 농촌에서 살았거나 농사를 잘 아는 이들조차 쉽지 않은 데 생판 초짜인 그가 귀농에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보란 듯이 귀농에 성공해서 노후를 잘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귀농의 시작은 참담했다. 시골에 노는 땅을 헐값으로 임대하고 집은 컨테이너를 사용해서 큰돈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평생 처음 지어보는 농사는 엄청난 시련이자 도전이었다. 아내도 없이 홀로 밥을 해먹고 사는 것도 버거웠다. 그렇지만 그는 농촌지도소를 뻔질나게 드나들며 도움을 구했고 젊은 농사꾼을 찾아다니며 성공적인 농사법의 전수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오지라 인터넷이 불가능했지만 대기업 통신회사와 싸워 이겨 지금은 최첨단 인터넷 통신선으로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지금은 그가 판매하는 고추는 저농약에 태양에만 말린 것으로 맛이 좋고 품질이 뛰어나다고 소문이 나서 시장에 내지 않고 전량 개인주문만 받고 있다. 돌이켜보면 그의 귀농 결심은 무식하게 무모하기는 했지만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고 부정적인 생각에 주눅 들지 않았기에 성공한 셈이다.

  

필자도 나이 40이 넘어 사역을 시작했고 40대 중반에 아내와 함께 화장품 방문판매업을 시작했다. 사역도 남이 하지 않은 새로운 분야이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누구나 두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변화하는 세상에 자신을 적응하고 새로운 것에 맞서는 도전정신이 없다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세상에 묻혀 있다가 떠나가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도 어렵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손을 내려뜨린 채 동공에 힘이 없이 무기력하게 하루해를 보내는 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적지 않은 은퇴자들이 새로운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지만, 더 많은 은퇴자들이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아 궁핍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60세가 넘어 새로운 일에 성공하여 인생의 빛을 발하는 이들도 있다. 나이가 먹었다고 늙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이며 낙관적인 마음이 없다면 늙은 것이다. ‘젊음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다. ...중략... 당신의 정신이 냉소의 눈과 비관의 얼음으로 덮이면 당신은 나이가 스무 살이라도 늙은 것이며, 안테나가 올라가 있고 그 안테나를 통해 낙관의 전파를 수신한다면 당신은 여든 살이라도 젊은 채로 죽을 수 있는 것이다.’(사무엘 울먼의 수필 ‘젊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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