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성령과 교제하며 사는가? by paulsh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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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ulsh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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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성령과 교제하며 사는가?
우리네 교회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에 대해서는 열심히 가르친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이다. 또한 성부 하나님의 영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은 동일한 분이시다. 그런데 성령의 가르침은 데면데면하다. 왜 그런지 아는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지식을 쌓아두는 가르침에 부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은 아니다. 성령은 지식으로 가르칠 수 없다. 그분의 임재는 머릿속에 쌓아두는 지식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영적 능력으로 보여주며 가르쳐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런 성령의 능력이 없는 우리네 교회에서는 성령에 대해 가르칠 능력이나, 체험으로 알게 된 지식과 경험도 없기 때문에 성령에 대해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현대시대에 조선시대의 법률과 생활규범을 가르치는 것과 같다. 그래서 거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무능하고 무기력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성령과 교제하는 삶으로 채울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싶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위의 두 구절은 매우 상반된 말씀이다. 먼저의 구절에서 ‘성령의 교통’이라는 말을 찾아보자. ‘교통하다’라는 동사(動詞)의 주어(主語)인 성령과 매우 낯설게 느껴지지만, ‘교통’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는 ‘코이노니아’이다. 아시다시피,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서 ‘교제’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성령과의 교제가 우리네 교회에 필수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예배시의 마침을 알리는 ‘축도’에 들어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밑의 구절에 의하면, 성령이 소멸한다는 말씀이 있다. ‘소멸하다’라는 헬라어 단어는 (불을) ‘끄다’라는 의미이다. 즉 성령의 불을 끄다는 뜻으로, 성령의 활동을 끄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성령의 활동은 성령의 존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령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그 활동이 활발하게 드러나는 것이고, 거꾸로 성령이 부재하는 증거는 성령의 활동이 사라지는 것일 게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들어온 성령이라도 언제든지 떠나가신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작금의 우리네 교회에서는 1분짜리 영접기도만 하면 성령이 득달처럼 들어와서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교육하고 있다. 그래서 한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에게 성령의 활동은 보이지 않는다. 거참 기이하고 희한한 일이다.ㅎ

  

아시다시피,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 등의 성경의 위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들이었다.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세상에 살 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다가 이 땅을 떠나갔다. 예수님은 말할 것도 없고,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한 사도들과 제자들도 놀라운 성령의 능력으로, 영혼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사역을 통해 초대교회를 세운 것은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교회라는 헬라어는 ‘공동체’, ‘무리’라는 뜻으로,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생각하는 교회는 죄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들이어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성령이 함께 하는 증거나 변화, 능력이나 열매가 있으신가? 없다면 없는 것이고 아니라면 아닌 것이다. 없는 데도 있다고 우기니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3:1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그렇다면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고 있는 증거는 무엇인가? 위의 말씀과 같이, 내적 증거는 평안과 기쁨과 자유이고, 외적 증거는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기도의 능력이다. 사도들과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고질병을 치유하며 기적과 이적으로 영혼구원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네 교회는 그런 영적 능력이 없는데도 자신들에게 성령이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 뭐, 믿는 거야 자유지만, 불쌍하고 어리석은 벌거숭이 임금님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3)

  

당신이 성령과 깊고 친밀하게 교제하는 증거가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나님이 이름을 혹독하게 부르고 죽기 살기로 성령의 내주를 간구하시라. 하나님은 당신이 찾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적당히 부르고 대충 찾는다면 시작도 하지 마시라. 하나님은 마음과 뜻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해 찾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부르다가 아무런 일이 없으면 슬그머니 손을 내리고 만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의 예로서,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싸우는 전투적인 태도와,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애쓰고 힘쓰는 간절한 기도의 자세를 원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그런 혹독한 마음의 자세가 없다면 성령과 교제하는 꿈도 꾸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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