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보험 살인 사건의 기억 by sanha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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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ha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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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보험 살인 사건의 기억
범죄로 읽는 한국사.... - 어느 보험 살인 사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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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근대적인 생명보험 체계를 갖춘 생명보험회사 ‘에퀴터블’이 세워졌어. 오늘날의 보험사에서도 볼 수 있는 해지환급금 제도, 보험계약자 배당, 가입 이전 건강검진 등의 제도가 최초로 도입됐지. 그런데 바로 그해 영국에서는 양녀를 보험에 가입시킨 후 독살하고 보험금을 타낸 ‘이네스 사건’이 발생했다. 근대적 생명보험은 보험범죄와 함께 출발한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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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Biz 채널에서 방송되는 〈라이프 인사이드〉에는 기기묘묘한 보험범죄의 역사를 조명하는 ‘사건의 재구성’ 코너가 있는데 이 아이템 목록을 훑어보자면 여러 번 모골이 송연해진다. 그 이름도 서늘한 한국의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연쇄살인범이면서 치밀한 보험범죄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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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보험사기로 보험금을 타내던 그는 가족들의 목숨을 앗아가면서 보험금을 취하는 악마로 변신했다. 역시 자신의 가족들을 닥치는 대로 해치고, 눈을 찌르고, 화상을 입히면서 보험금을 타냈던 ‘엄 여인’ 사건도 기억에 새롭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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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나 〈검은 집〉 같은 영화가 보험을 둘러싼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아빠는 적어도 보험범죄에 관한 한 영화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해. 그만큼 말을 잃게 만들 기묘한 사연이 많기 때문이야. 오늘 이야기할 사건도 마찬가지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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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3월, 서울 천호동의 강동 카바레에서 괴이한 사건이 일어났어. 퇴근 준비를 하던 종업원 한 명이 화장실 선반 위에 놓인 요구르트를 보고 “누가 나 먹으라고 요구르트를 두고 갔네” 농담을 하며 들이켰는데 그대로 쓰러져 죽고 말았던 거지. 요구르트 안에는 청산가리가 들어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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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사람을 노린 게 아니라 “아무나 죽어라” 하는 식으로 독이 든 음료수를 놓은 정황이 유력했다. 며칠 뒤 다시 독극물이 든 음료수가 발견돼 사람들을 경악시켰지.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이 사건은 지금껏 미제로 남아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쯤 뒤인 4월26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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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던 남자가 독이 든 우유를 마시고 사망에 이른 거야. 문제의 우유를 병실에 가져다놓은 건 남자의 아들이라고 했어. 아들은 병원 복도에서 어떤 20대 여자가 아버지에게 갖다 드리라며 우유 5개를 줬다고 증언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의 처제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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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문제의 인물을 잡아다 추궁했지만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어. 문제는 이 병원에서 비슷한 사건이 줄을 잇고 있었다는 거야. 간호사들이 약 냄새가 심하게 나는 음료수를 버린 적도 있었고, 독살 사건 열흘 전쯤 간병인 한 명은 “환자들하고 나눠 드시라고 요구르트 놔뒀어요” 하는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요구르트를 들이켰다가 농약 냄새가 심하게 나서 뱉어버린 일도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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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 카바레 사건처럼 “아무나 죽어라” 하는 살인마가 병원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았지. 당시 강동 카바레 사건은 보도 통제로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었는데 비슷한 사건이 터지자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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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병원에 원한을 품은 사람이 해를 끼치려는 의도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추정했다. 독살 사건이 발생한 날 밤, 병원 화장실에서 쪽지 하나가 발견됐을 때 그 추정은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지. “억울하게 희생들을 당하셔서 죄송스럽습니다. 이 병원에 입원한 게 죄입니다. 앞으로도 이십 명 더 희생을 시킬 겁니다. 빨리들 다른 병원으로 옮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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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는 발칵 뒤집혔고 의료사고 피해자, 해고자 등 병원에 원한을 품은 사람들을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었단다. 그때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들 사이에서 전혀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어. 독살당한 남편과 같은 입원실을 썼던 환자 가족들을 취재해보니, 그 아내가 의심스럽다는 말을 이구동성으로 하더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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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걱정도 했고 남편 앞으로 든 보험금 얘기도 했다.” “죽은 남편이 신음을 하고 온몸을 뒤트는 바람에 놀라 깼는데 부인은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으면서도 불도 안 켜고 있었다. 그래서 왜 불을 안 켜냐고 소리 지르니까 그제서야 남편이 이상하다고 의사 부르러 나갔다(〈조선일보〉 1983년 4월28일).” 이런 얘기들이 경찰에 전해지면서 경찰은 피해자의 가족을 조사하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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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든 우유를 건넨 사람을 유일하게 본 아들도 다시 조사를 받았다. 아들은 똑똑했어. “20대 여자가 여차저차 말하며 우유를 주었다.” 그런데 수사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열한 살 아이의 증언이 마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판에 박혀 있었던 거지. 마치 달달 외우기라도 한 듯 말이다. 남편의 보험금 문제도 혐의점을 키웠다. 남편은 200만원짜리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었는데 사고로 죽을 경우 6000만원이 지급되는 것으로 밝혀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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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완강히 범행을 부인했지만 경찰은 아들을 공략해서 사건의 전모를 캐냈어. “정직한 어린이가 돼야 한다”라는 수사관들의 설득에 아들은 사실을 고백했다. “20대 여인이 준 우유”라는 아들의 말은 엄마가 짜준 허위 진술이었어. 우유를 준 건 바로 엄마였다. 아버지에게 독을 먹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들이 울며 거부했지만 엄마는 “아버지와 상의한 일이다. 이렇게 해서 빚을 갚고 잘살아보라고 하신 거다”라고 설득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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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우유를 마시고 죽어가는 동안 아들은 침대 아래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고 하는구나. 그때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까. 결국 아내의 죄상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녀는 남편을 독살했을 뿐 아니라 독극물이 든 음료수를 병원에 놓고 사람들에게 먹여 ‘불특정 다수에 의한 독살’로 몰아가려는 연극을 꾸몄고 아들까지 공범으로 만든 셈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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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남편의 요청에 응한 것이며, 빚더미에 앉아 친정의 재산까지 날아갈 위기에서 남편이 자신을 죽이고 보험금을 타라고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남편이) 내가 죽으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또 두 아들도 떳떳이 키울 수 있다고 말해 남편을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 큰아들을 불러 엄마 말 잘 듣고 아빠가 없어도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고 했다(〈동아일보〉 1983년 4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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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을 타기 위해 남편에게 독을 먹이고 아들까지 범죄에 끌어들인 아내는 징역 15년을 선고받는다. ‘촉탁살인’, 즉 남편의 요청이 있었음은 인정됐지만 죄질이 워낙 나빴기에 내려진 형량이었지. 판사는 판결문에서 “나이 어린 아들까지 아버지를 살해하는 공범으로 가담케 한 것은 윤리적으로 볼 때 더욱 큰 죄를 범한 것”이라며 아내를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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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간청이 있었다고 극력 주장한 아내도 그 순간은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 같구나. 아버지에게 독이 든 우유를 가져다주고, 그 참담한 최후를 곁에서 지켜보게 만들고, 범죄 은닉의 수단으로 이용된 것은 아들에게도 어마어마한 트라우마로 남았을 테니까 말이다. 사업을 망치고 가산은 거덜 났을망정 행복한 가정이었다는 한 가족은 그렇게 범죄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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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것이면 보험금을 탈 수 없지 않냐. 나 혼자 죽인 것으로 해달라.” 아내는 자신의 형량이 더 무거워질 텐데도 이렇게 사정했다는구나. 그 후 시립 고아원에서 자란 아들은 1991년 무렵 “방송통신고등학교 3학년으로 공장에 취직해 월급 30만원을 꼬박꼬박 저축하는 착실한 젊은이(〈경향신문〉 1991년 5월14일)”로 성장했다고 하지. 오래전 재회했을 이들이 다시는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착실한’ 시민으로 이 세상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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