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rlBLghQEa4w

오늘은 이른 새벽 조계사를 한 바퀴 돌았다. 절은 항상 산속에 있어 도착하면 체력이 고갈된 채로 널브러져 있기 바쁜데, 도심 한가운데에 오르막도 없이 절이 있으니 좋았다. 어쩐지 속세의 느낌이 묻어나는 절이었지만 그래도 한 바퀴 돌면서 초가 타는 냄새를 맡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절을 차분히 걷다 보니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게 절이라 하면 할머니의 49재를 올렸던 경상도의 어느 외딴 절이 떠오르는데, 그때 내 나이가 열여섯쯤 됐으려나. 그런데도 기억 속 내 모습이 의젓해 고작 그 정도로 어린 아이였다는 게 실감이 안 난다.

---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할머니와 함께 살며 못되게 했던 일들이 자꾸 떠올랐고,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진 채 여러 기계를 달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서워 집 지척 거리인 병원을 찾아가지 않았던 일이 나를 오래 괴롭게 했다.

재작년쯤이었나, 할머니가 꿈에 나타나 내게 괜찮다고 말해준 일이 있다. 그때 이후로 막연하게 할머니가 나를 용서했나 싶은 마음이 들어 그 후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오늘은 절을 돌면서 어쩌면 할머니가 나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어쩌면, 내 존재만으로도 너무 행복해 내가 못되게 군 것은 아무 상관 없었을지도 몰라. 그게 할머니고, 그게 가족이니까.

---

조계사를 나와 종로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요즘 나는 내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게 이별로 느껴져 마음이 몹시 괴롭고 힘들었다. 사랑했던 것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만들었는데, 오늘은 그것이 이별이 아니라 서로 나아가기 위한 관계의 재정립일 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인연은 그렇게 쉽게, 내 맘대로 끊어낼 수 없고, 그게 내가 하루하루를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