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SIK / ⟪금강경⟫ 이야기 #3 "보이는 것, 모두 진실인가" - 조건부 보시하시면 안됩니다 by bulsik

View this thread on steempeak.com
· @bulsik · (edited)
$0.33
BULSIK / ⟪금강경⟫ 이야기 #3 "보이는 것, 모두 진실인가" - 조건부 보시하시면 안됩니다
금강경|Diamond Sutra
-|-
![Screen Shot 2017-12-21 at 9.08.34 AM.png](https://steemitimages.com/DQmY7YgWAsGAZQAvLPxfjBBPx9zBT6TVzwwC9LNbsmXMFFV/Screen%20Shot%202017-12-21%20at%209.08.34%20AM.png)|![Screen Shot 2017-12-21 at 9.08.44 AM.png](https://steemitimages.com/DQmcFq9d3XX2L7r5uU1jqLVU5nrEY9EFi5TA5zo3bjexyyE/Screen%20Shot%202017-12-21%20at%209.08.44%20AM.png)

---

>다시 수보리여, 보살은 [어떤] 조건에 [집착을] 두지 말고 베풀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형상에 [집착을] 두지말고 보시해야 하고, 소리나, 냄새나, 맛이나, 감각적인 [대상들에 따른] 생각에 [집착을] 두지 말고 보시해야 합니다. 보살이 [그런 것들에] 집착을 두지 않고 베푸는 복덕은 한량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동쪽 허공을 셀 수 있겠소?"
"없습니다."
"남, 서, 북쪽의 사방과 위 아래의 허공은 셀 수 있겠소?"
"없습니다."
보살이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하는 보시의 복덕은 그것과 같이 셀 수가 없습니다. 보살은 오직 이런 방식으로 [보시해야]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거룩한] 몸을 보고 여래를 봤다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거룩한] 몸이라는 것을 통해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여래가 [거룩한] 몸이라고 말씀 하셨지만 그것은 실제로 [거룩한] 몸이 아니라 [실은 그냥 이름일 뿐입니다.]"
"32상으로 여래를 봤다고 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32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여래가 말씀하시는 32상이란 상이 아니라 [32상이란] 명칭[에 지나지 않습니다].
잘 갖추어진 신체의 형상을 보고 부처를 봤다고 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잘 갖추어진 모든 [32]상들을 보고 여래를 봤다고 할 수 있겠소?
아닙니다...

---


# 소유할 것인가 베풀 것인가
소유와 베풂이란 상반된 행위는 참 다른 것 같아서 대개 사람들은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 편한, 원하는 삶을 살 거라고 여긴다. 문제는, 이것이 착각이라는데 있다. 물론 남들보다 가진 것이 월등히 많아서 조금은 누리고 사는 이들도 있지만, 소유란 그 한계가 명확하다. 소유란 결국 소비를 위해 있는 것이고, 가진만큼 쓰게 되지만 왜 우리는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소비하지 못하는 만큼의 더 많은 소유를 하려는지는 아무도 모를지도 모르겠다.
 
###### 채워졌던 공간이 비워지고 다시 새것으로 채워지는 과정의 반복이 소유와 소비의 가장 큰 매력인데, 비워진 후 소비한 공간이 다시 채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쓰지 못한다면 있는것도 버리는 셈이다.

물리적으로도 재화란 쌓아두면 멈추고 내어 놓으면 도는 법이다. 물이 움직이는 물은 맑지만 고여있으면 썩어버리기 마련. 돌기만 하면 새로 만들지 않아도 내 활동만큼의 생존과 소유를 누릴 수 있으니걱정은 내려놓는 편이 좋다(고 믿을 필요가 있다).

###### 소비를 통해 얻는 또다른 소유도 좋지만 우리는 희안하게도 베풂을 통해서 즐거움을 느끼는 특별한 유전자가 있나보다. 베풂이 주는 기쁨도 보통 기쁨은 아니다. 철저한 이해관계는 생존을 위한 어쩌면 타고난 숙명같은 것이다. 자식이라고 부모의 사랑이 그렇지 않겠는가. 결국 자신의 우수한 씨앗이 대를 이어가며 살아남기를 원하는 생존의 열망이 상당부분 작용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것과 상관없이 남들에게 무엇인가를 베푼다는 것은 그런치열한 생존의 이해관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것이 아니겠는가. 적어도 ‘소유’자체를 ‘자기자신’으로 인지하게되는 우리들의 일반적인 방식이라면. 

---

# ‘나’는 무엇으로 정해지나?

소유를 자신으로 안다니 무슨 말인가. 그야말로 태어날 때 아무 것도 갖고 오는 것 없이 달랑 주먹만 꼭 쥐고 나왔는데 무엇이 얼마나 달라서 서로 계급이 정해지고 한계가 정해지고 인생에서 그 단계를 수없이 상정하겠는가. 결국 나를 규정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가진것’이 무엇인지 혹은 얼마나 많은지, 내 부모가 누구인지, 동창과 친구로 누구를 두었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 어떤 메이커의 옷과 가방과 구두를 가졌는지... 나를 둘러싼 조건들이 나를 규정한다.
 

###### 그래서 우리는 가끔 ‘자신을 찾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나의 것’이 없어지면서 ‘내 자신’도 같이 사라져버린 것일까. 그걸 불교는 “소가 소를 타고 소를 찾는다”고 비꼰다. 대체 어디서 잃어버리셨기에 ‘따로’ 자신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더란 말인가. 

불교는 철학적으로 철저히 무아를 내세웠지만, 정작 부처님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각자의 ‘자기 자신’이라고 역설했다.

# 당신의 아이들에게 생존의 조건보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왜 가르치지 않는가 
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생긴 것’, ‘가진것’과 상관없이 각자 그 스스로가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가르치지 않는가. 세상은 거칠고 힘들지만 ‘네가 원하는 것은 무조건 할 수 있고, 해 보아야 하며, 실패도 소중한 가치이며, 두번세번 쓰러져도 일어나면 된다’라고 가르치지않는가.


###### 왜 그 가장 여린 청춘에게 ‘많이 가질 수록’ 행복하다고,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 무조건 최선을 다하라’고, 함께 사는 타인들을 밟고서라도 너만 더 많이 가지면 된다’고 가르치는가. 왜 가장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비어버린 창고에 다시 재화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나의 섣부른 걱정부터 물려주려 하는가. 

---

# 무소유
이제 소유에 관한 이야기를 접고 베풂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보시란 소유의 정반대 개념이다. 인도의 자이나교Jaina교도들은 불교와 5가지 계율을 공유하는데, 우리는 다섯번 째에 불음주, 즉 정신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것들을 취하지 말라는 계율이다. 따로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식으로 말하면 향정신성 약물일체에 대한 금지조약 이다.


###### 물론 이 계율의 배경에는 분명 인도의 소마soma제란 종교의식에 대한 붓다의 비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자이나는 5계에서 불음주계의 자리에 무소유란 항목을 대신 둔다. 불교에는 일상의 소유물에 대해서 수량의 한계를두고는 있지만 무소유란 계율을 따로 두고 있지는 않는다. 물론 조금은 극단적인 방식의 자이나와 불교의 무소유는 목적이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란 제명 때문에 이 개념이 더욱 익숙한데 무소유가 중요한 것은 소유물에 마음이 묶이지 말라는데 있다.

자이나가 무소유를 개인의 수행을 위한 도구로 친다면, 불교는 적극적인 베풂을 권장하는 사회적인 목표에 더 무게를둔다. 즉 무소유의 가치는 보시를 통해 가장 빛난다. 그래서 재화의 가치가 가장 무거운 보석들을 아낌없이 베푸는 조 금은 황당한(?) - 대체 그 보석이다 어디서 생길 수 있단말인가? - 이야기가 계속 ⟪금강경⟫에서 중복되는 것이다. 

---

# 보시바라밀
‘보시’는 산스끄리뜨로 다나dana인데 이걸 음사해서 예전에는 불자들을 ‘단월’이라고 불렀다. 이후에는 보시하는 주체라고 하여 ‘시주施主님’이라고 불렀으니 지금의 보살님, 거사님은 많이 발전된 표현이다. 왠지 ‘시주님’이라고 부르면 자꾸 절에 보시하라고 압박하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았겠는가싶다.


###### 아무튼 그래서 보시란 보살의 가 장큰덕목이되었고,보살의 실천행(바라밀)인 6가지 중 첫번째가 되었다. 그래서‘보시바라밀’이라고도 하고, ‘제1바라밀’이라고도 한다. 물론 순서상의 ‘제1바라밀’은 보시지만, 의미상 가장 중요한 제1바라밀은 마지막의 ‘지혜/반야바라밀’이다. 

보이고 들리는 대상, 즉 조건을 염두에 두지 말고 보시하는 것이 보시바라밀인데 우리의 베풂은 보시바라밀이 아니다. 대개 베풂을 받는 대상에 조건을 두기 때문이다. 부처님 앞에는 불전함이 있고, 물론 돈을 넣으시라고 봉투가 들어갈 만 한 구멍도 파 놓았다. 불자들은 거기에 아마 보시를 하면서 내심 ‘내가 이렇게 보시하니까, 이 공덕이 더 큰 좋은일로 내게 돌아오겠지’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인지상정. 너무도 당연하다. 거기까진 좋은데, 만약 그게 가시적인 효 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 한 할머니가 부모없이 외손주를 키워서 대학보낼 나이가 되었다. 뭔가 절에 보시해야 그 공덕으로 일단 학교에 합격이라도 할 것 같은데, 돈도 없고... 집 장독에 묵은 쌀은 가득 있는지라, 한 바가지 퍼다가 부처님한테 올려놓고는 “우리 외손주 대학입학만 좀 들어주시우”하고 하염없이 기도를 했다. 하지만 ‘똑’ 떨어졌다. 할머니는 다시 절에 와서 부처님한테 꼬장을 부렸다. 

>“쌀 한 바가지로 대학붙여 달라는 내 마음도 검지만, 
>그거 한 바가지 다 받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당신 속도 아주 누렇소”
 

틀린말은 아니다.^^


###### 대상도 조건도 염두에 두지 말라는 것은 어떤 바람없는 마음으로 베풀라는 뜻인 동시에, 불자가 절에 하는 것만이 보시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절이 불자들에게 보시해야 한다. 누군가 누군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어줄 수 있으면 그게 보시다. 대개 절이나 스님에게 보시하면 더 많은 공덕을 얻는다고 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금강경⟫ 어디에그런 말이 있는가. 만일 있다고 하면 “6경에 마음을 두지 말고 보시하라”는 이 대목은 틀린 것이 된다.

부처님의 자비가 돋보이는 것은 무연자비無緣慈悲 - 아무 연고나 관계없는 이들에게 똑같이 자비로 대하는 것 - 이기 때문인데, 당신의 문하에 들어온 스님들께 보시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면 “내 식구만 더 챙겨주세요” 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반적인 ‘사랑’과 뭐가 다르겠는가. 그렇게 쓰여진 경전이 있다면 누군가가 잘못 들었거나 잘못 썼기 때문이며, 실제 로 부처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사실이 있다면 당시 사회상이 지금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게 아닌데도 여전히 부처님이 그렇게 진심으로 말씀하셨다면, 그건 부처님이 틀렸다.
 
---

# 조건부 보시하면 결과가 더 못할 수도
자, 6경에 걸리는 것 없이 조건없이 베풀 때 그 공덕이 한량없다. 물론 이 한량없는 공덕을 기대하는 순간! 역시 6경에 걸리게 된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지만 사실 6경에 걸린 상태로 베풀면, 말하자면 조건을 두고 베풀 때 우리는 분명 어떤 상황이나 리액션이 내 생각과 부합하지 않을 때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것은 사실 예측 가능한 일이다. 대개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했더라도 그 상대가 그 호의를 당연힌 것 처럼 받아들일 때 마음이 상하지 않던가. 그래서 베풀기도 내가 베풀었는데, 베풀지 않았다면 상하지도 않았을 마음을 우리는 돈을 써가며 상하게하는 것이다. 그러니 실은 조건이 걸린 모든 베풂은 까딱하면, 공덕이 아니라 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조건을 걸었다고 누가 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건이 걸리다 보니,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내 베풂이 서운해진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베풀었는데, 받는 이들이 큰 반응도 감사도 없으니 서운해진다. 인지상정이나, 그 서운함이 베풀지 않은 것 보다 못한 상황을 만든다. 


###### 불자가 불자기에 얻는 베네핏은 바로 이 마음을 운용하는 수준과 능력의 차이에서 온다. 긴 칼을 자신의 몸처럼 쓰는 무사가 같은 칼을 든 수 많은 적들을 상대하는 것이 가능한 것은 고강한 무공의 힘이 아니겠는가. 마음을 잘 쓰는 고수는 수 많은 세상의 수 많은 경계를 만나도 힘이 별로 들지 않는다  가진 소유물이며, 지식이며, 탄탄한 근육에서 오는 강함이 아니다. 마음쓰는게 다른 이들은 모든 상황으로부터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어떨 때 불자들은 그 마음의 내공을 쌓는데 대단히 인색하다. 오히려 칼에 관심을 갖고 그 칼을 가는 좋은 숫돌을 찾고, 다른 불자들과의 내공대결에 관심이 많은 것같다.

---

# 신행생활로 더 좋은 불자가 된다고?
누가 더 많은 3천배를 해 봤는지, 천수경을 얼마나 빨리 읽을 수 있는 지, 누가 유명한 큰스님들과의 인맥이 많은지... 진상스님들도 많고, 진상불자들도 참 많다. 철인3종 경기에 나갈게 아니라면 3,000배를 선수쳐서 대체 뭘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바위가 되고싶은게 아니라면 가만히 더 오래앉아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가 깨달음과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것일까. 수행이라는 구실, 아니 착각에서 온 과욕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는 쥐고, 얻고, 획득하는 방식이 아니라 더 많이 내려놓을 수 있는가 하는 방식으로부터 행복과 자유를 얻는다.


###### 고수가 칼을 쥐는 순간부터 강기가 발산되고 외부의 적을 순식간에 베는 것이 싸움의 방법이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내부의 적과의 싸움은 칼을 내려 놓으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니 내부의 적을 치겠다고 단단히 무장하는 것은 정반대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무장을 해제해야 싸울 수 있다. 내려놓으면, 내려 놓을수록 마음의 내공이 쌓인다. 그래서 그 대단한 ‘더 오래 수행할수 있는 능력’조차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사실 “깨달음을 얻는다”란 말도 쉬운 말로 표현하기 위한 것일 뿐이지 결코 옳은 말은 아니다. 무슨 뱃지 획득도 아니고, "온전히 내려놓은" 사람을 깨달은 사람이라 하는데, “얻는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러니 소유는 생존을 누리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지만 손익의방식을 따르지 않는 결정도 할 수 있어야 때로는 마음이 손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 표면적인 부분을 진짜 모습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여지없이 상에 묶여 버린다. 물론 그 말이 보이지 않는 배후에 어떤 실체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는 것은 쉬워도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불가에서는 순順경계와 역逆경 계라고 부르는데, 역경계는 내게 어려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순경계는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떤쪽이 극복하기 어려운가. 바로 순경계가 더 어렵다.

절을 하고 경을 일고 기도하는 것은 좋으니까 열심히 한다. 열심히 살다보니 그렇지 못한 이들이 눈에 잘 뛴다. 가끔은 불러다 가르치기도 하고, 뒤에서 절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그 한심함을 비웃기도, 비난하기도 한다. 내가 가는 길이 옳고 바른길이니 마음놓고 타인들을 비난할 수 있다. 그리하여 순경계의 길에서 타인들의 잘못을 지적질하고 다니며 정작 자신의 길을 잃어버렸다.


###### 나쁜 모습을 나쁘지 않다고 보는 것은 어느정도의 내공이면 가능할만 한데, 부처님의 모습을 보고 무시하는 것은 어렵다. 동상이나 나무로 만든 불상앞에서 그렇게 오랜시간 기도하고 발원했는데, 그리고 그 앞에 놓여있는 불전함에 공덕이 될까하고 그렇게 보시했는데, 부처님의 이름을 그렇게 반복해서 불렀는데, 내가 아는 부처님의 모든 모습을 완벽하게 갖춘 부처님이 금빛 아우라 휘황찬란하게 빛내며 내 눈앞에 나타났다. 꿈속에 부처님을 봤다. 그래서 가피를 입었단다.

---

# 부처도 하나의 상일 뿐
금강경에서 여태 그렇게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마저, ‘하나의 상’에 불과하다. 무착문희 스님은 문수보살을 만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다가 실패했다. - 정확히 말하면 만나고도 몰라봤다 - 나중에 자신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지고 나니 부처가 따로 필요 가없었다. 그러니 동짓 팥죽을 휘젓고 있는 김위로 문수보살이나타나니 그 큰주걱으로 문수보살의 싸대기를 쳤다.

>"죽 젓 는데 걸리적 거리니 저리 비키쇼!"

 문수보살이 뜨거운 팥죽이 묻어있던 그 큰 주걱으로 싸대기를 맞았지만 기분이 좋았으면 좋았지, 결코 맘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그러니 보이고 들리는 대상(6경)에 마음이 끌려다니지 않고 무조건적인 베품을 행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모습을 보았다고 해도 부처란 ‘상’을 내지 않을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온갖 말로 표현되고 온갖 정의로 설명된 부처님을 봐도 그것만으로는 6경에 매달린 마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이니 거기 마음이 매여 버리면 보시의 공덕은 별볼일 없다고하는 대목이다. 물론 듣지말고 보지말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부처님은 왜 이렇게 당신의 신체를 비유로 들어 가며 반복적으로 상에 대해서 폐쇄적(?)인 입장을 반복하시는 것일까. 

![Screen Shot 2017-09-21 at 9.07.55 AM-1.png](https://steemitimages.com/DQmVQkhPeLXXuj6WiC4YQgri8trNjhzetRHoybMpnREc64k/Screen%20Shot%202017-09-21%20at%209.07.55%20AM-1.png)

###### source_bulsik 1503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and 9 others
properties (23)
post_id21,268,171
authorbulsik
permlinkbulsik-3
categorykr
json_metadata{"app":"steemit\/0.1","tags":["kr","kr-buddhism","kr-magazine","vajrachedikasutra","diamondsutra"],"image":["https:\/\/steemitimages.com\/DQmY7YgWAsGAZQAvLPxfjBBPx9zBT6TVzwwC9LNbsmXMFFV\/Screen%20Shot%202017-12-21%20at%209.08.34%20AM.png"],"format":"markdown"}
created2017-12-21 02:14:03
last_update2018-12-06 13:24:33
depth0
children2
net_rshares53,984,336,261
last_payout2017-12-28 02:14:03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275 SBD
curator_payout_value0.058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8,245
author_reputation6,657,839,682,254
root_title"BULSIK / ⟪금강경⟫ 이야기 #3 "보이는 것, 모두 진실인가" - 조건부 보시하시면 안됩니다"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author_curate_reward""
vote details (73)
@himapan ·
그렇지요. 조건부 보시는 자신을 황폐하게 만들겠지요. 인간이란 댓가를 꼭 바라지요. 어떤 경우도 물돈 그렇지 않은 군자들도 있지만요. 가끔
properties (22)
post_id21,476,443
authorhimapan
permlinkre-bulsik-bulsik-3-20171222t120120065z
categorykr
json_metadata"{"app": "steemit/0.1", "tags": ["kr"]}"
created2017-12-22 12:01:21
last_update2017-12-22 12:01:21
depth1
children0
net_rshares0
last_payout2017-12-29 12:01:21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000 SBD
curator_payout_value0.000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77
author_reputation453,593,337,257,927
root_title"BULSIK / ⟪금강경⟫ 이야기 #3 "보이는 것, 모두 진실인가" - 조건부 보시하시면 안됩니다"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gaeteul ·
감사합니다. 고귀한 법문 잘 봤습니다.
properties (22)
post_id22,202,058
authorgaeteul
permlinkre-bulsik-bulsik-3-20171227t135012472z
categorykr
json_metadata"{"app": "steemit/0.1", "tags": ["kr"]}"
created2017-12-27 13:50:12
last_update2017-12-27 13:50:12
depth1
children0
net_rshares0
last_payout2018-01-03 13:50:12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000 SBD
curator_payout_value0.000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21
author_reputation3,950,632,813,983
root_title"BULSIK / ⟪금강경⟫ 이야기 #3 "보이는 것, 모두 진실인가" - 조건부 보시하시면 안됩니다"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