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 대각암 by chunse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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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대각암
![IMG_9886.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cKTnmmVKT1Eb5RjbNoAWWvp16A2jfcxQ6B9TdhNp5kcM/IMG_9886.JPG)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802. 한국 불교 태고종 총림이자 대한 불교 조계종 20교구 본사인 선암사의 주소다. 이 주소는 내 주민등록 초본에 본적지로 쓰여있다. 호남 5대 매화인 선암매가 이른 봄이면 다른 어느 곳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일주문 계단을 올라 대웅전을 마주한 돌담길을 따라 옆으로 걷다가 뒷간을 지나쳐 나있는 오솔길로 나가  20여분 산길을 오르면 대밭 너머의 대선루와 널찍한 절 마당을 가진 대각암을 만나게 된다. 
몇 백 년 전 대각국사 의천이 한동안 머물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 했다.

  내 유년 시절의 가장 오래된 기억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시작한다. 힘든 서울살이에 여유가 없었던 부모님은 나와 어린 동생을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까지 이곳에 맡겼었다. 대각암의 주지 철암스님이 친할아버지였기 때문이다. 방학이 다가오면 시골에 가기 싫다고 울며 부모님께  생떼를 썼다.  
할아버지가 시골 산 속에서 중노릇을 한다는 사실도 싫었다. 왜 할아버지가 스님이 되었는지 
머리가 더 큰 뒤에 듣기도 했지만 어린 속내로는 그런 어른들 삶에 고개가 끄덕여질 리 없었다. 

  겨울에는 절 앞 ‘괴목’ 마을에 사는 또래들과 눈 쌓인 산을 오르며 토끼몰이를 하러 다녔다. 여름이면 불두화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과 곤충을 잡아 두꺼비에게 먹이로 줬다. 지게작대기를 목어 배 사이에 넣고 두드리며 큰 스님들의 의식을 어설프게 흉내도 냈다. 그래도 따분하고 심심했다. 

![IMG_9882.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PNELVFksNsus97XB6WzroCnuqw89DSLAgqQZL4dFYsVJ/IMG_9882.JPG)


해가 지고 나면 촛불 아래 바느질하는 할머니 옆에서 엄마는 언제 오냐고 칭얼대다가 깨고 나면 아침이 되곤 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해질녘이 되면 언제 오실지 모르는 엄마를 기다리며 작은 솟을대문에 기대어 마냥 서있었다. 숲 사이로 엄마 모습이 언제 나타나나 바라만 보다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는 할머니의 부름에 그만두곤 했다. 그런 시간을 여러 날 반복하고서야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90년 4월, 어머니의 임종을 하지 못했다. 나는 입대 하던 날 아침, 병상에서 누워 큰아들 올 때까지는 죽지 않고 기다릴 거라는 당신을 뒤로 한 채 병실 복도로 나섰다. 입대한 지 15일 만에 끝내 더 기다리지 않고 돌아가셨다. 

  해마다 4월이 되면 그렇게 가기 싫던 대각암을 가려고 달력을 보며 날을 잡는다. 십여 년 전부터 그래왔다. 가족들에겐 매화사진을 찍으러 간다고 말한다. 
산을 올라 샘에서 물 한 그릇 떠 마시고 불당 앞 널찍한 툇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을 내려다본다. 
눈을 감고 바람이 내는 풍경 소리를 듣고 있자면 어느 새 수십 년 전 나로 돌아가 엄마를 기다리며 서 있다. 선암매는 2월 말에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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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nny ·
풍경 소리가 들리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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