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어김없이 아침 댓바람 부터 울려퍼지는 앞집 아이의 고함소리. 어쩐지 전세 가격이 다른곳 보다 싸더라니. 밤새 우는 갓난아이를 방치해두던 중국인 부부의 지옥에서  겨우 벗어났다 싶었는데  더 깊은 비명 나락에 빠져버렸다.

"알람이 따로 필요없네 쩝.. 그래도 오늘은 그 망할 나비가 없어서 다행인건가?"
 동네에 길고양이들이 갑작스레 많아졌는데 아이는 거기에 푹 빠진건지 요즘엔 그렇게 나비를 찾는다. 

'쩌~억 쩌~억' 
장판과 발바닥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하모니에 리듬을 타며 거실로 걸어가 냉장고 문을 열다가 멈춘다. '슬리퍼를 하나 살까?' 하며 발에 밟힌 무언가를 털어내고 열린 냉장고 안을 쓰윽 훑는다.
"그나저나 오늘을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용팔이 전력을 가진 영업맨. 모 대형 가전마트에서 전직의 경험을 살려 화려한 판매실적을 올리며 이달의 영업사원 부동의 1위 자리를 고수하던 능력자. 그만큼 너무 열정적으로 일을 했던 탓인가, 사람을 상대하는 일에 신물이나서 충동적으로 일을 그만두었다. 남들은 유학이다 해외여행이다 뭐다 하며 밖으로 나돌때 묵묵히 개미처럼 일만 했더니 한동안 여유로운 시간을 가져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직접 사직서를 냈지만 그동안 회사에서 좋게 봐줬는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해준 덕에 반년은 실업급여를, 코로나 여파로 나온 N차 재난지원금, 국민취업지원제도로 취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빙서류만 내면 반년간 다달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덕에 그동안 냈던 세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게다가 연애도 안하지 그렇다고 유흥을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집은 전세에 지출도 적다보니 통장의 잔고는 줄어들 생각을 않고 있었다. 경제적 부담감을 느낄 틈이 없다보니  재충전의 시간은 놀자판으로 변색됐고 어느덧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렇다. 나는 백수다. 2년째 백수. 돈 많은 백수. 

'Shut up, just shut up shut up. Shut it up, just shut up shut up~♬'

최애곡인 Black Eyed Peas - Shut Up 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온다.
10년째 변함없는 내 벨소리다.

"뭐야~"
-요~ 백수 뭐하냐?
"뭐하긴 집이지. 왜?"
-집앞이다 비번 xxxx 맞지?

띡띡띡띡 삐리릭~  현관문이 열린다. 허여멀건한 놈 하나가 들어오려다 현관 앞에 멈춰선다.

-"아 이 생퀴. 집 안 꼬라지 보소. 청소 좀 하고 살아라 백수새끼야. "
"이 새끼는 오자마자 잔소리 질이야 지랄말고 들어와라"

끼리끼리 논다고 백수 친구 놈이 하나 있다. 지말로는 전업투자자라고 하는데 말이 좋아 투자자지 하는짓을 보면 영락없는 백수다. 그런 주제에 돈 조금 만진다고 날 2년째 쳐 놀고있는 백수 취급을 한다. 망할새끼.

"이 형님도 돈번다. 게임 아이템 팔아서 매주 30씩 번다. 어디서 백수 취급이야?"
-"아~ 눼 눼 그러십니까? 쇤네 암것도 안해도 파이프라인으로만 하루 20씩 나오는뎁쇼."
"뭐? 월 600? 좋네~ 그러니깐 오늘도 니가 쏴라. 오늘은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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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크으으 이번에 나온 오이표 맥주 기가막히네. 그나저나 너 일 안할거냐? 나이 더 먹으면 이제 써주지도 않아. 뭐..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슬슬 해야하는데 여름이다. 더워~. 날 좀 풀리면. ㅋㅋㅋ"
-"역시 돈 많은 백수는 다르네 존경한다."
"아 몰라. 이번에 재난지원금 또 나온다던데? 크으으으" 

남은 캔맥주를 탈탈 털어넣는다. 그리고는 새로운 캔을 따는 소리에 몰래 뱉은 한숨 소리를 숨긴다.

"지금까지 해온게 영업판매인데, 이제 영업은 다신 하고 싶지 않고.. 다른건 할 줄 아는게 없으니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하기에도 막막하다. 뭐해 먹고 살지? 그래서 너도 전업 뛰어든거 아니냐? 지금이야 벌고 있으니 다행이지 조심해라 한방에 훅 간다."
-" 이 형님은 오십억 벌거다. 걱정말아라. 오십억 가즈아!!!!!"
"미친새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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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크크 북동구 위닝 최강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이기고 갑니다. 연습 좀 해라 허접아 ㅋㅋㅋ. 오늘도 잘 놀다 간다 쉬어라~"

저 깝죽거림에 한대 치고 싶다가도 내심 내 걱정돼서 왔다 가는 놈인걸 알기에 친구 하난 잘 둔것 같다고 느낀다. 거기에 워낙 긍정적이라 나까지 긍정에너지에 빠져들게 하는 불가사의한 놈이다. 한번은 수천만원 마이너스된 화면을 보여주더니 존버는 승리하는게 공식이라면서 곧 오를거라며 걱정말라더니 결국엔 익절을 하고 소고기를 사주는데 뭔 멘탈이 저리 강한지. 

나보고 공부 좀 하고 조금씩 돈을 굴려보라는데, 난 손이 떨려서 도저히 안되더라. 저렇게 여유롭게 지내는거 보면 '어디 나도 한번 해봐?' 하다가도  어릴적 뭣도 모르고 주식할때 -10만원에 벌벌 떨던 모습이 생각나 관둔다. 아서라 아서. 있는돈도 없어질라.

신나게 마시고 놀며 어지럽혀진 자리를 정리하다보니 잠시 저 구석에 쳐박아두고 잊고있던 걱정이 스물스물 하나 둘 씩 올라온다. 놀땐 좋았는데 쩝.. 

"저새끼는 왜 와서 일 얘길 꺼내가지고는 사람 심란하게 쓰읍. 하..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결국엔 다시 영업뿐인건가??" 

내일 부터 슬슬 알아봐야겠다며 마음을 다잡는 순간,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문득 시계를 바라본다. 밤 11시 45분.  지옥의 2차전이 시작된다.

"왈왈" "멍멍" 컹컹" 

소리에 놀란 동네 개들이 합창을 해대고, 앞집 아이는 이에 질세라

"나비야~~~~~~~" 

"왈왈왈" 

하. 아주 지ㄹ..  아니 난리 부르스다.

일이고 나발이고 먼저 이사를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