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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pre>호텔왕&nbsp;게임이&nbsp;내게&nbsp;준&nbsp;것</pre>
<sub><q>&nbsp;&nbsp; S o u l&nbsp;e s s a y&nbsp;&nbsp;</q> </sub></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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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sp;대학 기숙사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재미있는 기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내가 생활했던 기숙사는 아파트 구조로,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세 개 있었다. 각 방엔 두 사람씩 생활했다. 고향도, 과도, 나이도, 저마다 생활 방식도 다른 여섯 명이 일 년 동안 한 호실에서 생활한다.

&ensp;2000년대 초는 전국에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신축 기숙사였던 남자 사생관은 아직 방에 인터넷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였고,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기숙사 1층에 있는 컴퓨터실을 이용해야 했다. 

&ensp;이삼년 후에 순차적으로 인터넷 선이 방방마다 들어온 후엔 대부분의 사생들이 여가 시간을 자기 방에서 보내는 일이 많아졌다. 고독을 괴로워하지 않을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혼자 즐길 것이 없는 상태도 썩 나쁘진 않다. 내가 기숙사에서 지냈던 2년간은, 여가 시간이 생긴 사생들이 즐거움을 찾아 거실로 나오곤 했기 때문이다. 

![보드게임.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bjVdDWWouWWLyWC378CrpsVY8Q7QjxFVUP3S2W2qX3LX/%EB%B3%B4%EB%93%9C%EA%B2%8C%EC%9E%84.jpg)

&ensp;별 일이 없을 때면 우린 저녁마다 거실에 모여 <호텔왕 게임>이라는 보드게임을 즐겼다. 난 그때 <호텔왕 게임>을 접하고 그 게임의 예찬론자가 되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집에 사두고 종종 친구들과 그걸 즐기기도 했다. 

&ensp;<호텔왕 게임>은 희대의 베스트셀러 <부루마블 게임>과 비슷한 방식이다. 주사위를 굴리고 말이 선 곳의 땅을 사고 호텔을 지어 그 곳을 지나는 사람에게 숙박비와 통행료를 받는다. 다른 사람의 땅에 자주 머물게 된 불운한 유저는 일찍 파산하여 게임에서 아웃된다. 최종적으로 땅과 호텔, 그리고 현금의 총액이 가장 높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ensp;기본 방식과 구조는 똑같지만, <부루마블 게임>과의 결정적인 차별성이 하나 있다. <호텔왕 게임>은 ‘협상과 거래’라는 요소가 들어가 있다. <호텔왕 게임>에선 같은 색으로 묶인 두 개의 도시를 다 소유해야 그곳에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의 도시만 가진 유저들은 협상과 빅딜을 통해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 <부루마블 게임>도 지금 이 땅에 어느 정도의 돈을 들여 언제 건물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유저의 주관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결국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주사위의 운이라는 ‘우연적 요소’가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ensp;<호텔왕 게임>은 초반 주사위의 불운으로 다소 뒤처졌다 하더라도, 적절한 협상과 빅딜을 통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 다른 유저보다 많은 재산이나 좋은 운만 믿고 유저들과 아무런 협상을 하지 않는 유저는 결국 뒤처지게 된다. 다른 유저들이 협상에 성공하여 윈-윈 하게 되면 결국 나머지 유저들에겐 불리한 조건이 하나 추가되기 때문이다. 

![보드 게임2.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e5itQ9drKEdvLMYsdW27oouzcuZzw82cj2kk28joY1Wr/%EB%B3%B4%EB%93%9C%20%EA%B2%8C%EC%9E%842.jpg)

&ensp;게임 내내 유저와 유저 사이에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치열한 토론과 설득, 그리고 사탕발림이 난무한다. 

>&ensp;“민석이 형, 잘 들어봐요. 형 지금 두 군데 건물 지은 거 갖고는 많이 불안해요. 지금 형 건물 위치로 봐서는 스톡홀름에 건물이 꼭 필요해 보이네요. 마침 제가 갖고 있네요. 제가 스톡홀름 밀어 드릴 테니, 로마 저한테 넘기시는 건 어때요?”
&ensp;“뭐 일리가 있긴 한데, 로마 단가가 스톡홀름보다 꽤 비싼데 그냥 넘기기엔 좀 그렇지 않나? 다른 조건이 필요한 거 같은데?”
&ensp;“아이고 형, 스톡홀름은 위치상 가격을 따질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라니까요! 이거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면 형 주사위 굴려서 말이 설 곳이 없어요. 완전 파산각이라니까!”
&ensp;“음, 어차피 내가 그 땅을 가져가도 지금 당장에 건물 지을 여력이 없거든. 그래서 급한 상황이 아니거든? 스톡홀름에 300 얹어주면 고려해볼게. 건물 지을 값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ensp;“아이 참 형도, 이거 스톡홀름이 어떤 땅인데, 상황 판단이 아쉬우시네. 그간 쌓은 정을 봐서 100 얹어 드릴게요.”
&ensp;“에헤. 쓰는 김에 우리 기분 좋게 협상 마무리하자고. 난 악수할 준비가 됐는데! 내가 한 발 물러설게. 스톡홀름에 200 얹어서!”
&ensp;“아고, 형 못 당하겠네요. 후회하지 않을 선택입니다. 자 악수!”

&ensp;게임 내내 이런 줄다리기가 오간다. 상대방이 왜 그 땅을 내게 내놓아야 하는지, 또 내가 갖고 있는 이 도시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전략적으로 중요한지에 대해 끝없이 상대를 납득시키는 것이다. 2인 협상을 넘어 삼각 협상도 이루어지기도 하고, 나머지 유저들이 협상 판을 흔들기 위해 마음을 못 정한 유저를 반대 논리로 설득하기도 한다. 이미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 유저는 절박한 유저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협상을 더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무척 현실적이고 냉혹한 자본주의 시장의 일면을 느낄 수도 있다. 

&ensp;<호텔왕 게임>은 유저의 협상 능력, 판단 능력이 승부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우연적 요소가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루마블 게임>보다 훨씬 상위에 있는 고급 게임인 것이다. 

&ensp;기숙사에서 이 게임을 밤에 자주 하다 보니, 서로의 거래와 협상 스타일도 알게 되고, 시행착오가 쌓이면서 불리한 협상과 유리한 협상의 전형도 체득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들의 협상은 신중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들 머릿속에 수많은 경우의 수를 넣고 협상에 임하게 되었기 때문에, 얕은 수로는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 수 없었다. 결국 순조로운 협상을 위해선 윈-윈의 방법을 구안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이십대 초반에서 중반이었던 우리들은, 그 게임을 통해 CEO의 마인드와 경제적 감각, 국제적인 협상력을 익혔던 것이다. 

&ensp;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가 가까이 오지 못했던 덕에, 밤마다 우린 국제적인 기업가가 되어 자본주의의 속성을 체득해가며 진한 우정을 쌓을 수 있었다. 

&ensp;인터넷과 기술의 진보가 우리에게 준 것도 많지만, 빼앗아 간 것도 많다. 우린 혼자 있을 때 무료함을 느끼기 쉽지 않다. 일정한 시간까진 고독과 외로움도 잊을 수 있다. 문명의 이기 덕에 홀로 식당에 앉아 있어도 두리번거리지 않게 되었다. 처음 간 모임에 일찍 도착해서 또 일찍 온 낯선 사람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대신에 손바닥의 위의 기기에 집중하기만 하면 된다. 

&ensp;평소에 외로움과 고독, 어색함 따위를 제대로 접해보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외로움, 고독, 어색한 상황을 접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하다. 언제 그것들과 대면하게 될지 모른다. 스마트폰과 인터넷 세상에서 평온을 얻던 사람이 갑작스레 그것들과 대면했을 때, 느끼는 불안감과 두려움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ensp;한 연구 결과에선 1984년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은, 실제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한다고 말한다. 스마트폰 덕분이다. 많은 이들이 친구들과 만나는 모임에서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이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그 정도 되면 이미 스마트폰 중독이라고 한다. 

&ensp;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 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어색할 권리를 빼앗겨버린 사람들에게 남은 것은 결국, 낯선 것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ensp;난 인터넷이 미처 보급되지 못한 과도기에 대학 기숙사 생활을 한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는, 저마다 고독과 싸워야 했고 어색함을 이겨내는 방법을 배워야 했으며,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서로의 손을 붙잡는 법을 익혔다. 

&ensp;서랍 한 구석에 넣어둔 <호텔왕 게임>을 볼 때마다 내가 파산하며 익힌 것이 무엇인지, 협상을 성공하며 누린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ensp;그것은 분명 호텔과 부, 그 이상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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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5.jpg](https://cdn.steemitimages.com/DQmUTw2JnJkucghkDN2fE8qP4FpMztKvLFT88CG3nezeyB1/%EC%98%81%EA%B0%905.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