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세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 순간은 늘 기다림을 요구한다. by laylador

View this thread on steempeak.com
· @laylador · (edited)
$6.22
[일상에세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 순간은 늘 기다림을 요구한다.
#### 글쓰기는
_______
 정리되지 않은채 나의 흩뿌려져 둥둥 떠다니는 과거들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일종의 치료제였다. 어떤 문장의 일련을 써내려가야 할지 아니면 어떤 단어를 선택해야 적절할지 고민하는 몇 초, 아니 몇 분의 고찰의 시간 빼고는 대부분은 수월한 편이였다. 글쓰기 거리 영감은 늘 도처에서 나타났다. 살아온 지난 시간들을 전부 글쓰기에 녹여내는 데만 일년이 걸렸으니 더욱이 욕심내지 않는다. 물론 전부라고 표현하기란 무리임을 알고 더욱 사력을 다해 쓰고 또 써야 함도 잘 알고 있다.
<br>
&emsp;게다가 글쓰기로 부터 얻는 행복감은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 에서 처럼 -그녀는 매일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준다고 말했지만, 사정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자, 하루 작업량은 매번 다르지만 매일 꾸준히 글을 써서 꽤 많은 분량이 모여야 책으로 출간되고, 또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그녀의 행복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25- 타인이 읽어주고 인정해주어야 지속적으로 가능한 일임 또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뭐 어떠한가. 후엔 모를지라도 현재의 글쓰기는 나의 치료제 역활이 크다.
<br>
&emsp;아침엔 일어나 명상과 요가를 하고 (물론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빼먹곤 한다) 아침으론 시리얼과 요거트 또는 토스트를, 가끔은 오믈렛을 만들어 먹는다. 저녁을 가급적이면 일찍 먹고 잠자리에 들기 때문에 아침엔 배가 고파 눈이 떠지는 편이다. 아침마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습관도 버리고 따듯한 물이나 차를 마신다. 후 오전-오후 시간엔 보통 연습을 한다. 카피하고 싶은 곡을 반복 재생해 듣고, 라인을 따고 스캣으로 카피하거나 피아노 연주로 익힌다. 반복적이고 간단한 일이지만 꾸준히 매일 해온 습관 덕분에 다행히 지루하진 않은 편이다. 현재는 Cherokee 의 JazzMarciac Live 버전을 듣고 있는데 알토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했건만 역시나 솔로가 마음에 든다. 이번주는 너로 결정했다. 이렇게 조각 내 모은 솔로분석과 카피는 곡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후 나의 연주에 유용하게 쓰인다.
<br>
&emsp;저녁이 되기전엔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간다. 겨울엔 5시만 되도 어둑어둑 해지기 때문에 노을이 지는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하늘이 전경이다. 벤치에 앉아 풀멍을 때리다가 아이들의 소리가 잦아질때면 주섬주섬 내가 좋아하는 집 근처 15분 거리의 카페로 걸어 간다. 카페오레를(가끔은 레몬 한조각을 꽂은 탄산수를) 시킨 후 글을 쓰기 시작한다. 헤밍웨이 처럼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날의 글에 만족하고 일어서는 편이다. 내 글을 남과 비교하거나 자괴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진작 깨달은 후부터 나는 나만의 속도를 조금은 즐기게 되었다.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에, 그리고 내가 아는 일만 쓰는 것에 대해 더 이상은 부담을 가지지 않는다.
<br>
&emsp;하지만 매일이 이렇게 여유로운 것만은 아니다. 파리에서는 늘 크고 작은 프로젝트가 빈번히 생긴다. 이번주만 해도 시청에 가야 하고, 약속된 잼 세션만 두 개다. 기타리스트와 맞춰보기로 한 곡도 익혀야 하고 슬슬 다가올 연주 준비도 해야한다. 물론 비교적 압박이 덜 한 잼 세션은 가끔 파하기도 하지만, 차근 차근 정리에 힘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하는 나에게 이탈리아에 7년을 산 내 친구는 살던 아파트, 일, 몸담고 있는 여러 관계들을 모두 정리하고 새로운 둥지를 트는데만 일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정리는 그만큼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다. 
<br>
&emsp;푸른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겨울중 축제와 공휴일이 많은 11,12월은 그나마 1,2월보단 나은 편이다. 온갖 형형색의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축제의 분위기가 도시에 깃들어 있는 달이기 때문인데, 2019년의 막달은 마크롱 정부와 시민들의 대립중 일어난 파업 때문에 그마저도 덜했다고 했다. 대중교통 파업 80%가 두달 내내 지속된 일은 프랑스 역사상 작지 않은 일이다. 저번주에 있었던 바스티유와 헤퓌블릭 광장의 파업의 여론도 꽤나 거센 편이였다. 이런 와중에 캬페데자르트 Cafe des Arts, 카페두마고 Cafe deux Magots 등을 전전하며 책을 완성하기 위해 기를 쓰는 모습이라니. 물론 당장 책을 완성한다고 해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진 않겠지만.
<br>
&emsp;현재 읽어야 할 책들은 발치에 쌓여있다. 연구해야할 타이틀도 한국에서 꽤나 가져왔다. 하지만 도무지 시작할 수가 없다. 조금만 집중하려 하면 타이밍이 어긋나는데다가 현재 신경쓰이는 일들이 몇가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지하게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 끝내는데 몇달이나 걸릴 일임을 알고 있어서인지 현재는 접근조차 할 엄두가 나질 않아 손을 놓고 있는데... 방금 전화가 울렸다. 기타리스트에게 온 전화였지만 금방 끊어지는 바람에 받지 못했다. 분명 본인 집에 들렸다 같이 잼을 하러 가자고 하는 전화겠지. 
<br>
&emsp;루캬, 이 친구로 말할것 같으면 몇년 전만 해도 활동할 지면을 찾지 못해 여러 세션을 전전긍긍 하다가 드디어 트리오로 정체성을 굳게 자리잡더니 현재는 떠오르는 보컬들과 듀오, 쿼텟 등으로 콜라보를 할정도로 잘 나가는 바쁜 기타리스트가 되었다. 이런 친구를 기다리게 하는 나는 단지 오늘 저녁 쓰던 글을 끝내고 싶어서만은 아니라, 급격히 추워진 밤 날씨에 기타를 메고 나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뒤로 미루고 싶은 마음에서 일것이다. 지금 이 친구는 나와 같이 프로젝트 그룹으로 프렌치 팝의 새 지평을 열자는 꿈을 크게 꾸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 뵌 교수님 또한 좋은 기회라고, 그토록 기다려온 좋은 멤버의 운이 찾아온것이 아니냐고 말하실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이든 좋은 타이밍이 있으리라, 조금은 기다려보자는 마음 상태다. 
<br>
&emsp;아무리 좋은 멤버를 만나도 현생을 사는데 급급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기 일쑤였던 나는 지난 숱하게 소중한 인연들의 손을 놓아왔다. 그들 또한 아쉽게도 그랬으리라. 물론 음악 외로 자주 만나서 놀고 그때를 자주 회상하고는 하지만 재즈로 돈을 벌기란, 그저 재즈를 사랑하고 연주하고픈 마음으로만은 어려운 일임을 그때의 우리는 알지 못했다. 물론 몽크나 찰리파커, 그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수많은 장르 속 재즈를 향유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실은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되든 안되든 연습하고 곡을 올리고 연주를 추구했다면 지금쯤은 다른 모습으로 나를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뭘 하든 지금, 행복한 나의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게 아닌가.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즐겁게 내 할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나처럼, 다들 지금 자신만의 여행을 떠나 있는 중이다. 
<br>
&emsp;여행이라 하니, 올해 가야 할 목적지 (라고 일컫는다면)가 한 곳 늘었다. 미국 그리고 영국, 발리의 우붓이 한 곳이다. 우붓은 사원이 많고 숲으로 둘러쌓여 명상자들의 수련장소로도 유명하다. 올해 급한 일들을 끝내고 나면 여름 중반이 될 듯 한데 그때 즈음엔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다. 가장 기대되는 명상 수련 외에도 블랑코 르네상스 미술관, 박물관 등 문화적인 곳이 많다. 기대를 가득 안고 아침에 눈을 뜨면 구글로 검색해 우붓 사원의 한곳 이미지를 띄워놓고 명상을 하고 있다. 소상할수록 관측의 의미는 확장되고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그 말을 굳게 믿는 중.
<br>
&emsp;어쩌면 모든 것을 크게 본다는 자세로 소략히 넘어가던 태도가 문제였을까. 글을 쓰는 것도, 본거지를 정리하는 일도, 길었던 석사의 해들을 마무리 하는 일도 부질없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김형경님의 애도심리 에세이를 다시 꺼내 읽을 때가 되었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작년에만 교보문고에서 세권째 사 지인에게 나눠주곤 했다. 김형경님의 말처럼 우린 매일 무언가와 이별을 한다. 최근 가장 사랑했던 이별을 떠올리자니, 즐겁게만 보내지 못하고 있을 마음들이 무겁다. 기다릴때 행복했다는 말을 듣고 나선 여정이지만 마치 내가 부족한 탓인 것만 같아 미안쩍고 송구하다. 사람들과 즐겁게 이별하고 떠나온 몇 주 전이 떠오른다. 다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그리고 잘 살고 있겠거니, 나 또한 그렇게 잘 지내주는 것이 우리를 위한 길이라고 믿는다.
<br>
&emsp;결국 바란스로 돌아온다. 어느 방향을 가던, 무수한 선택속에 바란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로 남는다. 데미안 라이스를 들으면서, 체로키를 틀어놓고 둘 중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나의 과제다. 그리고 그것을 잘 해낼것이냐는 후 질문해야 하지 않을까.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상황속에서도 움켜쥘 힘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꾸준히 앞으로 전진하고 하는 힘일테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주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도 나의 상태는 누진을 거듭한다. 
<br>
&emsp;학생이 늘 불만(?) 이라며 귀엽게 토로하는 부분, 바로 결론 Conclusion 쓰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그 말이 공감이 되는 요즘. 무언가를 시작해도 자꾸 손을 놓기 일쑤고 매듭을 짓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맡에 붙여놓은, 세상 아름답고 멋진 순간은 늘 기다림을 요구하더라고요, 라는 작가 고물님의 엽서에 적힌 귀여운 손글씨에 자꾸 눈이 간다. 그 날을 기다리는 나는 그 힘 덕분에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가장 아름답고 멋진 순간은 오늘이고, 또 그날 일테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and 27 others
properties (23)
post_id83,795,984
authorlaylador
permlink4rxohj
categoryessay
json_metadata{"tags":["kr","travel","zzan","steemit"],"app":"steemit\/0.1","format":"markdown"}
created2020-01-26 21:27:27
last_update2020-01-27 10:41:33
depth0
children0
net_rshares24,164,087,836,726
last_payout2020-02-02 21:27:27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3.333 SBD
curator_payout_value2.883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4,617
author_reputation125,250,012,469,929
root_title"[일상에세이] 가장 아름답고 멋진 순간은 늘 기다림을 요구한다."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author_curate_reward""
vote details (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