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자와 올해의 만두 빚기 by layl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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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ylador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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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와 올해의 만두 빚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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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엄마! 만두 빚으러 언제가요? 몇시까지 가면 돼?” “1시 반까지 오면 돼. 엄마도 지금 지하철 타고 가는 중이야.” 지난 주 120포기 김장으로 몸살을 앓아누운 할머니와 엄마는 그렇게 또 며칠만에 일을 벌렸다. 만두를 또 얼마나 빚을 예정인지, 만두속은 또 언제 하셨는지 모른채로 그렇게 난 할 수 없이 가방을 메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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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만두는 기원을 담아 빚는다고 했다. 한 해 이 만두를 먹는 동안 가족이 건강하게,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도록 좋은 마음을 담아 정성스럽게 빚는다. 우리 집은 전통적으로 엄청난 양의 김치만두를 매 해 만들어 쪄 먹는데, 많이 빚는 해는 천개까지 빚었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다) 어찌나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운지, 주위에서 좀 살 수 없겠냐고 애원할 정도다. 물론 연로한 할머니가 힘드실까봐 더 이상 음식 일을 벌이면 안된다고 매번 으름장을 놓지만, 쉴 줄 모르는 할머니는 늘 일을 벌리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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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도착하니 이미 한창 바닥에 큰 종이를 펼쳐놓고 한쪽에선 반죽을 만들고 한쪽에선 빚는 공장 같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할머니집을 지키는 고양이 점순이가 나를 발견하곤 슬그머니 바라보며 애옹, 소리를 낸다. “일찍 온다고 했는데 조금 늦었어요. 조금만 기다렸다 같이 하지!” “뭘 그걸 기다리고 그려. 너가 뭘 한다고야.” 할머니를 만나면 일단 숨 막힐 때까지 꼭 안는 것이 순서다. 지난 주 김장으로 인해 힘들어하셨던 할머니가 안쓰러워 안는 동시에 무슨 또 만두를 하냐고 타박했지만 할머니는 얼른 옷 벗고 쉬라고 나를 나무란다. “뭘 쉬어 나 일하러 왔어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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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내 임무는 피를 얇게 펴기 전, 덩어리 진 피를 어느정도 눌러놓는 (가장 쉬운) 것이었다. 그리고 포인트는 잔심부름이다. 가장 어리고 빠릿빠릿 하니 도중에 콜라 사와, 떡볶이 사와, 커피 타, 등등 두 분을 보좌하는 아주 중요한 임무를 맡는다. 늘 그랬듯이 그녀들의 대화는 따듯한 정과 타박이 한데 섞여 잘 버무러진 김치같이 상큼하기 그지없다. 대화는 하하호호 깔깔대다가 논쟁을 펼쳤다가, 도저히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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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그러다 문득, 엄마의 생일이 떠올라서 물었다. “엄마, 내일이 엄마 생일이니까 우리 저녁에 맛있는거 먹으러 갈까?” 엄마가 평소 좋아하는 해물 전문 요리점을 봐두었기에 슬쩍 운을 띄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하던일을 멈추시고 이쪽을 쳐다보신다. “그러냐? 어메, 그럼 니도네?” 놀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미안한 기색이 가득해지는 할머니. 엄마와 나는 생일이 하루 차이다. “야 그럼 이거(만두) 정리하고 나가서 아구찜 먹자. 엄마가 사줄게.” 할머니가 다급하게 말한다. 그 말에 엄마는 됐다며, 내가 엄마를 사줘야지 왜 엄마가 사냐고 또 타박을 한다. 그래도 할머니는 영 미안한 기색이 가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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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딸 생일도 몰라봤다는 놀란 할머니의 표정이 너무 귀여워 빚던 만두를 떨어트리고 한참을 웃었다. “아이고 배야 할머니, 크하하, 내가 할머니 덕에 오랜만에 웃었어요.” 그러자 할머니는 정색을 하고 물어본다. “왜야? 며칠간 웃을일이 없었어? 뭔일 있었어?” 슬쩍 눈치를 보던 엄마가 얘 요새 마음이 좀 안좋아서 그래, 라고 덧붙인다. 말 없이 만두빚기에 열중하다 엄마가 흠흠, 기침을 한다. 괜히 또 걱정하실까봐 아니, 요새 날 괴롭히는 몇 나쁜 사람들이 있었어 라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자 할머니 왈. “아니 어떤 노무 xx가 우리 손녀딸을 괴롭혀? 년이야 놈이야? 다 데리고 와 아주 그냥 엉덩짝을 뽀셔봐줄랑게 (정말 말씀 그대로 적음) 어딜 감히 우리애를 건드리고 있어 확 그냥! 너 그런거에 맘 아파하지 말어!” 흥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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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sp;이번엔 엄마와 함께 다시 한번 빵 터졌다. 어쩜 저렇게 찰진 욕을 정겹게 하실 수 있을까. 게다가 나를 위해 이렇게 화를 내주는 모습이라니. 가슴 속 깊이 뜨거운 무언가가 슥 올라왔다. 갑자기 눈가가 시린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을 들어준다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네 뒤엔 내가 있다는 것. 입은 웃는데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크흐, 쓰읍- 킁, 흐흐흐, 엉엉. 울다 웃다 얼굴이 가관인 날 보며 엄마가 말한다. “엄마 그렇게 열내지 마. 얘 맘이 약해서 또 울잖아.” 괴롭힌 애 데려오랬다고 성냈더니 갑자기 눈물을 터트리는 손녀딸에 조금은 당혹스러우셨던 할머니. 아녜요 할머니, 감사해서 그래요. 저 괜찮아요 라고 말했지만 이미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 싸..) 해진 만두공장.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없던 일처럼 열심히 만두 빚기에 잘만 돌아간다. 또 웃고, 울고, 화도 내고, 편도 들어주었다가 손에 맛있는것 쥐어 주셨다가 늘 언제와도 사랑이 가득찬 할머니 집. 올해 만두 천개는 못했지만, 천개 먹은 만큼 마음이 따듯해져 돌아왔다. 늘 그립고 따듯하고 욕이 넘치는(?) 할머니 오래 건강하게 같이 살아요. 제가 곧 유럽여행 시켜드릴게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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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zam ·
영원한 내편, 얼마나 든든한 분들인지요.
만두 빚는 삼대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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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
할머니가 다 준비해놓으셔서 저는 몸만 가서 깔짝대고 왔네요. 감사한 시간이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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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1042 ·
아이고, 참 정겹네요. 읽기만 해도 흐뭇해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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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lador ·
ㅎㅎ 만두 빚기 노동 후유증에 허덕였지만, 맘이 참 좋더라구요. 흐뭇해지셨다니 기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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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어도 네 뒤엔 내가 있다는 것. 이런 마음에 가족이 가장 소중하고 나를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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