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천규덕 by sanha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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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anha88 ·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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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천규덕
. 6-70년대 최고의 인기 스포츠는 무엇이었을까. 답은 프로레슬링이었다. 지금은 한 물이 아니라 두 물 세 물이 간 이름이지만 6-70년대 프로레슬링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애들은 김일의 박치기를 보기 위해 TV 있는 집 아이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아양을 떨었고, 만화 가게에 “여건부 (이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 출전 ‘레쓰링’ 경기”가 나붙는 날이면 어른들까지 만화 가게를 가득 메웠다.

전쟁 때 황해도에서 피난나온 한 청년은 우연히 일본의 프로 레슬링을 다룬 영화를 보게 된다. 안 그래도 체육관에서 레슬링으로 체력을 다지던 그는 영화 속에서 자기가 갈 길을 발견한다. 일본으로 가서 프로레슬링 경기를 지켜보며 노하우를 어림잡은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국내 최초의 프로레슬러가 된다. 부산 지역에서 서울로 진출한 프로레슬링은 공전의 히트를 쳤고 황해도 피난민 청년은 한국 프로레슬링의 산파이자 대부가 된다. 그 이름이 장영철이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날렵한 드롭킥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레슬러

그런데 그렇게 승승장구 잘 나가던 장영철에게 강력한 신흥 세력이 등장한다. 신흥 세력이라기보다는 선진(?) 세력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일본 프로레슬링의 최고봉 역도산의 제자 김일이 입국한 것이다. 흥행에는 성공하고 있었지만 여러모로 미숙하고 일본 프로레슬링의 화려한 기술과 경기 운영에 비하면 조악했던 국내 레슬링계에 김일의 출현은 야릇한 긴장의 대결 구도를 가져왔다. 개척자를 자임하는 토종 국내파와 ‘선진문물’을 등에 업은 해외파의 대결은 레슬링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던 중 1965년 11월 27일 운명적인 사건이 터진다.

5개국 친선 레슬링 대회가 열렸고, 김일의 메인 게임에 앞서 장영철은 일본의 오쿠마와 3전 2선승제의 시합을 치르고 있었다. 경기 중 오쿠마가 장영철에게 ‘새우 꺾기’를 시도했다. 허리를 꺾는 위험한 공격에 장영철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매트를 두드렸다. 이는 항복 표시로 경기가 중단되어야 했는데 어쩐 일인지 오쿠마는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았고 여기서 사단이 났다. 링 사이드에 포진해 있던 장영철의 제자들이 링 위로 튀어 올라가 오쿠마를 집단 폭행한 것이다. 그들은 (김일이 불러온) 오쿠마가 장영철의 허리를 꺾어 버릴 심산이었고, 이는 김일측의 장영철 제거 음모라고 판단했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장영철이 한 말을 상당한 파장을 가져왔다. “오쿠마가 각본대로 하지 않고 (김일의 지시를 받아) 이기려고 했다.”는 증언을 했는데 이 말이 경찰과 언론을 거치면서 “프로레슬링은 쇼다.”라고 장영철이 선언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사실상 장영철은 "프로레슬링은 쇼냐?"라고 묻는 기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실 프로레슬링은 예나 지금이나 ‘쇼’적인 성격은 분명히 있다. 100 킬로그램의 거구가 로프 위에 올라가 매트에 쓰러진 이를 향해 점프해서 실제로 무릎으로 내려찍는다면 경기마다 송장이 나오지 않겠는가. 원로 레슬러 천규덕이 문화일보와 인터뷰한 걸 들으면 적어도 당시의 프로레슬링은 쇼적인 성격은 있되 완전한 쇼는 아니었던 것 같다.


![image.png](https://cdn.steemitimages.com/DQmbK43aJsMUBrwRQovrfjTYvUi3Frc6oLbqQEcVFSNL1UF/image.png)

"레슬링엔 엄격한 룰이 있어요. 예컨대 팔을 15도 이상 꺾으면 안 됩니다. 더 꺾으면 팔이 부러지잖아요. 그런데 그걸 꺾었다가 풀어버리니까 사람들이 쇼로 생각하는 거지요. 절대로 경기 결과를 서로 짜지 않아요. 다만 프로는 아마와 다르니까, 경기를 할 때 승부보다는 화려한 테크닉을 우선해야 한다는 묵계는 있지요. 그래야 관중을 즐겁게 할 수 있으니까

 천규덕 역시 국내파 프로레슬러였다.  장영철이 드롭킥, 김일이 박치기라면 그의 장기는 당수였다.  애초에 역도산이 덩치가 산 만한 백인 레슬러들을 가라데 촙으로 자빠뜨리는 모습을 보고 레슬링에 입문했던 그는 태권도 유단자로서 그 기술과 레슬링을 접목한 당수치기로 인기를 모았다.  현역 군인이었던 그를 레슬링에 이끈 이는 다름아닌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얘기가 있다.  천규덕의 엄청난 파워를 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그를 불러 “레슬링 한 번 해 보지 그러나”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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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https://cdn.steemitimages.com/DQmYHHnzy4bdVfGwfsAbeQWVhHkRGx4Jf6uJ1BiVnqhYd71/image.png)
블로그 https://blog.naver.com/kenpa44 에서 퍼옴 


 1973년 그가 벌였던 황소와의 대결은 뭇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대결이라고 하기엔 적잖이 어색한 것이 푸르륵거리는 황소와 맞붙어 싸운 게 아니라 황소를 묶어 놓고 그 대가리를 당수로 수십 회 때려 쓰러뜨렸기 때문이다. 이걸 TV로 중계했는데 저녁 시간에 이걸 보다가 밥맛 떨어진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매일경제 1973년 11월 28일) 그런데 여기에는유신 시절 어디에나 있고 무슨 일이든 했던 중앙정보부가 개입됐다고 한다. 원래 천규덕은 한 방으로 황소를 눕힐 힘이 있었고 본인도 마장동 도축장에 가서 다섯 마리나 단방에 쓰러뜨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벤트도 계획한 것이었고.  그런데 갑자기 중앙정보부에서 음산한 호출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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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황소가 무슨 상징인 줄 아나?” 
 “네? 잘...... 저는 그냥 이벤트루다가.....” 
 “황소는 공화당의 상징이야 이 친구야.” 그때 천하의 천규덕도 소름이 쫙 끼쳤다고 한다. 중앙정보부는 천규덕에게 “쓰러뜨리긴 하는데 무척 힘겹게 쓰러뜨리는” 연출을 지시했고 결국 천규덕은 전력을 다하지 않은 당수 수십 번으로 ‘겨우’ 황소를 자빠뜨리는 스타일 구김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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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검은 타이즈를 입고 링에 올라오는 것으로 유명헸던 천규덕은 대개 각본상 처음에 무지하게 두들겨 맞는 역할을 많이 했다.  공포의 헤드락으로 유명한 여건부와 짝이 돼서 태그매치를 벌일 때 여건부는 처참하게 당하는 천규덕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펄쩍펄쩍 뛰다가 날쌔게 링안으로 쳐들어가거나 태그를 한 뒤 공포의 헤드락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대개 마무리는 천규덕의 몫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가 당수를 휘두르기 시작하면 환호가 일었다. 마치 김일이 박치기를 시작하면 이제야 하이라이트가 시작되는구나 했던 것처럼. 


![image.png](https://cdn.steemitimages.com/DQmTjJZXU4Yhp1a66qr4YusrYCkXsgNTbmkXsq4JoUmiL58/image.png)

 언젠가의 경기에서 천규덕은 항상 그랬듯 얻어터지고 피투성이가 된 뒤 당수를 시전했다. 상대는 비틀거리다가 ‘로프 반동’을 당했는데 튕겨 나오는 상대 선수를 잡아챈 천규덕은 ‘파일 드라이버’를 시전햤다. 상대를 수직으로 거꾸로 들어서 무릎 사이에 끼우고 주저앉아 버리는, 머리를 땅에 박아 버리는 매우 위험한 기술.  물론 프로 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경기니 요령껏 기술을 쓰지만 그래도 이 기술을 쓰다가 죽은 레슬러도 있을 만큼 위험한 기술이다. 어쨌든  당시 거구의 천규덕이 역시 다른 거구를 잡아 공깃돌 돌리듯 거꾸로 들었다가 찧어 버리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파일 드라이버 후 상대는 큰 대자로 누웠고 ‘원 투 쓰리’로 경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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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파일 드라이브를 인상적으로 본 건 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일대 사고가 터진 것이다. 그 경기를 지켜봤던 초딩들이 이얏 이얏 하며 헤드록이나 어설픈 코브라 트위스트 (이건 정말 어떻게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를 흉내내던 중 한놈이 대뜸 다른 한놈에게 이 파일 드라이브 기술을 건 것이다.  덩치가 좀 큰 녀석이 발버둥을 치는 땅꼬마 녀석을 거꾸로 들어 머리를 허벅지 사이에 끼우고는 냅다 주저앉아 버렸다.  머리가 터졌다.  TV 속 천규덕이 무색할만큼 피가 한강처럼 흘렀고 여자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다행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지워지지 않는 어린 날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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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 장영철 모두 말년의 모습은 그리 좋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100킬로그램들이 넘었던 그 강골들이 말년에는 40~ 50킬로그램의 야윈 몸들이 돼 있었으니까.  천규덕 옹은 한 10년 전만 해도 당당한 거구로 남아 있어서 저 양반은 그래도 옛날의 포스가 남아 있구나 했는데 오늘 그 부음을 듣고 말년의 사진을 보니 역시 왕년의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  역시 세월은 기어코 인간을 시들게 만드는 힘을 지녔는가....   

향년 88세.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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