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by roundyround

View this thread on steempeak.com
· @roundyround · (edited)
$1.65
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https://youtu.be/-arA7x28ID0

<br>

머핀 실종 사건까지 쓰고 나니 '리포트'라 이름 지은 이 글을 이제야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비밀 같은 건 아니다. 다만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고는 좀처럼 꺼내기 힘들었던 이야기들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처음에는 소설 형식으로 쓰려고 했다. 소중한 만큼 공감을 얻고 싶은 욕심은 둘째치고 또라이 취급을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놓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드물지만, 듣는 사람의 표정이나 목소리를 살피면 그 정도쯤은 알아차릴 수 있다. '자, 여기 증거가 있습니다'하고 하나둘 증거를 늘어놓으며 누군가를 설득하겠다는 마음은 아니니까 가로등과의 대화는 일단 미뤄 두고 두 번째 이탈 이야기를 해야겠다.

<br>

첫 번째 이탈이 있고 이틀이 지난 아침이었다. 분주한 아침의 소리에 눈을 뜨고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뒤 다시 눈을 감았다. 아침에 다시 잠이 들 때는 잠에 빠져드는 과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불면의 밤을 쌓아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점점 멀어지다가 점이 되어 사라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 그때 점이 되어 사라지는 것은 나의 의식이다. 정체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작고 희미하지만, 나는 그 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알고 있다. 계속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달려가 사라지는 그것을 붙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라지게 두어야 한다. 잠들고 싶다. 점에서 시선을 거두면 그것으로 끝이다. 비로소 잠의 시작이다. 그때, 티끌만큼 작은 그것이 사라지기 직전, 익숙한 진동이 다시 찾아왔다.

<br>

여느 때와 같이 부드럽고 익숙한 진동이었다. 그렇지만 첫 번째 이탈 이후 진동은 나에게 다른 의미가 되었다. 이탈의 전조 현상이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처럼 무언가 나를 잡아당겨 주기를 잠자코 기다렸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룰렛 테이블 위에서 빙빙 도는 기분도 없었다. 귓가에는 지잉 지잉 소리가 맴돌았다. 진동이 멈춰버릴까 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나는 조심스럽게 '나가' 하고 속으로 말했다. 진동 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다시 '나가' 하고 외쳤다. 그러다 문득 이상했다. 나가는 존재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에게 '나가'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인가? 내 몸을 빠져나가는 존재도 결국 나인데 나에게 어떤 행동을 명령하는 것은 좀 이상하잖아. '나가자'가 맞다. '자, 나가자' 좀 더 정확하게는 '으쌰, 일어나자' 였다. '으쌰' 부분에서는 정말 힘을 주어 몸을 일으키는 듯한 상상을 했다. 이럴 수가. 그건 정말 나의 힘, 나의 의지, 나의 노력으로 되는 일이었다. 나는 몸으로부터 빠져나와 둥실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가'와 '나가자'의 차이가 결정적이었다. 몸으로부터 분리된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것은 나의 영혼인가? 아스트랄체? 유체? 모르겠다. 의식이 몸이 아닌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둥실 떠올랐는데 동시에 누워있는 내 몸의 일부가 보였다. 돌아누워 내 몸을 확인한 것이 아니라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서 앞과 뒤를 동시에 보고 있다.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보고자 하면 그냥 보이는 것이다. 가지런히 차렷 자세를 하고 누운 두 팔과 쭉 뻗은 두 다리가 보였다. 형태를 가진 무언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그냥 '느껴진다'와는 분명 다르다. 아, 됐구나. 정말 나왔구나.

<br>

이용객이라고는 오로지 나뿐인 텅 빈 호텔 수영장을 떠올렸다. '와! 신난다!' 소리쳤다. '와! 신난다!' 메아리가 돌아왔다.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미지근한 물의 감촉을 느끼며 수면 위에 떠 있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누운 채로 방 안을 둥둥 떠다니다가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벽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가 볼까? 팔을 젓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지 않았는데 여전히 둥둥 뜬 채로 벽을 향하여 나아갔다. 그러나 벽에 부딪힌 후 튕겨 나오고 말았다. 이런, 왜 안 되지? 다시 허공을 맴돌다가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으로 나가자. 나간다. 내 방은 2층이지만, 날 수 있으니까 괜찮아. 그대로 닫힌 유리 창문을 통과했다. 창밖으로 빠져나왔을 때는 엎드린 채로 허공에 떠 있었다. 집 앞 골목길이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매일 걷던 골목길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채도가 많이 빠져 회색에 가까웠다. 두 팔을 몸통에 붙이고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꿈에서 많이 날아 보았기 때문에 어렵지 않았다. 머리의 방향을 바꾸면 어깨, 허리, 골반, 허벅지, 무릎, 그리고 발끝이 차례로 방향을 틀며 따라왔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 높낮이가 달라졌다. 나의 몸놀림은 미끈한 돌고래처럼 아주 우아했다. 세상에. 기분이 진짜 좋았다. 너무 신이 나서 입이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따금 소리도 질렀는데, 그건 사실 느낌만 남아있다. 무엇도 들은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인 걸까? 한 블록을 지나서 오자 늘 지나던 단독주택 앞마당의 커다란 감나무가 보였다. 잎사귀에만 초록색 칠을 한 수묵화처럼 회색 배경 속에 감나무의 초록 잎사귀가 무성했다. 때가 되면 찾아와 목이 터져라 깍깍 울어 대던 덩치 큰 까치의 울음소리가 떠올랐다. 신기하네. 겨울인데 잎이 무성하구나. 문득 그 초록의 생명력이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럽게 느껴져 다가가 마구 얼굴을 비비고 싶었다. 도톰하게 살이 오른 싱그러운 잎사귀로 손을 뻗었지만, 손끝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잎사귀가 만져지지 않았다. 두 번째 블록을 지나 골목길을 반 정도 빠져나왔을 때 마을버스 정류장이 있는 큰길이 보였다.

<br>

>맞아. 나는 가야 할 곳이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 거지?

<br>

그 순간 나는 몸으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누운 채였다. 진동은 계속되고 있었다.

<br>
👍  , , , , , , , , , , , , , , , ,
properties (23)
post_id84,673,829
authorroundyround
permlink-07
categorystimcity
json_metadata{"tags":["choonza","astral-report"],"image":["https:\/\/img.youtube.com\/vi\/-arA7x28ID0\/0.jpg"],"links":["https:\/\/youtu.be\/-arA7x28ID0"],"app":"steemit\/0.2","format":"markdown"}
created2020-02-24 09:27:45
last_update2023-02-11 12:20:18
depth0
children5
net_rshares7,306,999,370,223
last_payout2020-03-02 09:27:45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855 SBD
curator_payout_value0.791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2,875
author_reputation12,146,312,332,121
root_title"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author_curate_reward""
vote details (17)
@steemitboard ·
Congratulations @roundyround! You have completed the following achievement on the Steem blockchain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table><tr><td><img src="https://steemitimages.com/60x70/http://steemitboard.com/@roundyround/posts.png?202002241019"></td><td>You published more than 90 posts. Your next target is to reach 100 posts.</td></tr>
</table>

<sub>_You can view [your badges on your Steem Board](https://steemitboard.com/@roundyround) and compare to others on the [Steem Ranking](https://steemitboard.com/ranking/index.php?name=roundyround)_</sub>
<sub>_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_ `STOP`</sub>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 [Vote for @Steemitboard as a witness](https://v2.steemconnect.com/sign/account-witness-vote?witness=steemitboard&approve=1) to get one more award and increased upvotes!
properties (22)
post_id84,676,694
authorsteemitboard
permlinksteemitboard-notify-roundyround-20200224t110735000z
categorystimcity
json_metadata{"image":["https:\/\/steemitboard.com\/img\/notify.png"]}
created2020-02-24 11:07:33
last_update2020-02-24 11:07:33
depth1
children0
net_rshares0
last_payout2020-03-02 11:07:33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000 SBD
curator_payout_value0.000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900
author_reputation38,705,954,145,809
root_title"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levoyant · (edited)
“나가자.” 소름 돋았어요^^
properties (22)
post_id84,869,347
authorlevoyant
permlinkq6k8js
categorystimcity
json_metadata{"app":"steemit\/0.2"}
created2020-03-02 09:47:54
last_update2020-03-02 09:48:06
depth1
children3
net_rshares0
last_payout2020-03-09 09:47:54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000 SBD
curator_payout_value0.000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16
author_reputation686,541,297,822,453
root_title"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roundyround ·
$0.11
너무 반가워서 엉덩이 점프 하면서 댓글 보고 또 보았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보얀님!
👍  
properties (23)
post_id84,887,291
authorroundyround
permlinkq6m1sh
categorystimcity
json_metadata{"app":"steemit\/0.2"}
created2020-03-03 09:17:06
last_update2020-03-03 09:17:06
depth2
children2
net_rshares606,821,089,367
last_payout2020-03-10 09:17:06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053 SBD
curator_payout_value0.053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47
author_reputation12,146,312,332,121
root_title"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
author_curate_reward""
vote details (1)
@levoyant ·
이 글이 날 소환했다는 걸 알고 너무 기뻤죠!
다음글 기다려요❤️
properties (22)
post_id84,891,373
authorlevoyant
permlinkq6mdg3
categorystimcity
json_metadata{"app":"steemit\/0.2"}
created2020-03-03 13:28:51
last_update2020-03-03 13:28:51
depth3
children1
net_rshares0
last_payout2020-03-10 13:28:51
cashout_time1969-12-31 23:59:59
total_payout_value0.000 SBD
curator_payout_value0.000 SBD
pending_payout_value0.000 SBD
promoted0.000 SBD
body_length36
author_reputation686,541,297,822,453
root_title"아스트랄 리포트 춘자 _ 07 돌고래처럼"
beneficiaries[]
max_accepted_payout1,000,000.000 SBD
percent_steem_dollars10,000